
정부가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로 반출하겠다는 구글의 요청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칫하면 국내 첨단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법인세를 거의 내지 않는 구글이 막대한 세금이 들어간 국가전략자산을 무상으로 가져가는 것은 형평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정훈 연세대 정보산업공학과 교수는 12일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주관한 ‘국내 지도 데이터의 반출이 국가산업에 미치는 영향’ 토론회에서 “구글이 국내 고정밀 지도를 해외로 반출하면 국내 미래산업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세수가 줄고 산업주권이 약화할 가능성이 있어 현명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오는 8월 구글이 요청한 고정밀 지도 반출 허가에 관한 결론을 내린다. 구글의 정밀지도 반출 문제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표적인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지적하며 통상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과 통상 협의를 진행 중인 정부가 이 문제를 쉽게 협상카드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국내 고정밀 지도의 잠재적 경제적 가치는 수백조원에 달한다. 지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자율주행·스마트시티·위치 기반 광고시장 등 국내 주요 첨단혁신산업 규모를 현재 342조원으로 모 교수는 추정했다. 2030년쯤에는 7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 교수는 지도 데이터가 구글 등에 열리면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플랫폼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이는 국내 고용 감소와 세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중소사업자가 미래 핵심 서비스를 고가의 글로벌 요금으로 이용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무임승차’ 논란도 일고 있다. 구글이 요구하는 ‘5000 대 1 축척의 고정밀 지도’를 구축하는 데는 약 1조원의 세금이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고정밀 지도를 유지하는 데만 해마다 수백억원의 세금이 들어간다.
구글은 한국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도 서버가 해외에 있다는 이유로 네이버·카카오보다 법인세를 덜 낸다. 구글코리아가 2023년에 낸 법인세는 155억원으로 네이버가 낸 법인세(4963억원)의 3.1%에 불과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가 지난해 9월 한국재무관리학회에 낸 연구보고서에서 추산한 2023년 구글코리아의 법인세는 최대 5180억원으로 실제 낸 세금보다 33배 많다.
이승엽 국립부경대 정보융합대학 교수는 “법인세를 회피하고 한국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자산에 기여한 바 없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에 정작 그 결과물을 이전하는 것은 공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밀 지도 반출은 안보 위험을 가중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일호 한국공간정보산업협회 본부장은 “정밀도 1~2m 수준의 공간정보가 공개되면 드론 공격, 테러, 사이버전 등에 활용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