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회 불참 이유 “생업·육아·장소”
참석자 향해선 “고맙고 뿌듯하다”
계엄·탄핵에 일부 이견 있었지만
모두 ‘서부지법 난입·폭력’ 부정적
남성 극우화 프레임엔 의문 제기
다수가 “정치제도 민심 반영 못해”
부산에 사는 30대 김준혁씨(가명)는 자신을 보수 쪽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한다”는 이유에서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는 일이 바빠서 제대로 챙겨보지도 못했다. 뒤늦게 계엄의 이유를 설명 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말다툼하는데 너무 약 올렸다고 그냥 때려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뒷감당 생각을 안 하고. 아니면 치밀한 계산이라도 하든가… 명분도 빈약한 거지.”
12·3 불법계엄 사태 이후 탄핵 찬성, 반대의 뜻을 가진 시민들은 각기 거리로 나왔다. 양측의 규모 차이를 떠나, 두 쪽으로 나뉜 광장의 모습이 한국의 현실인 듯 조명을 받았다. 극단적 소수가 과대 대표되는 사이, 광장에 나오지 않았던 시민들의 진짜 생각은 어땠을까. 청년참여연대 등 25개 청년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은 집회 경험이 없거나 한 차례뿐인 20~30대 100명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언급되지 않는 청년 100인의 목소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년들은 정치 성향을 떠나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에는 모두 부정적이었고 대체로 계엄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등 최소한의 민주주의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불법계엄 사태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높은 시민의식에 자긍심을 보였지만, 저출생을 비롯해 한국 사회의 다른 모든 분야의 전망이 어둡다고 생각했고 특히 정치권에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 윤석열 뽑았지만 계엄은 반대
“탄핵 말고 답이 있나.” 부산에 사는 30대 남성 참여자는 지난 대선에서 “검찰 출신이어서 힘도 있고 휘둘리지 않을 것 같았다”며 윤석열 후보를 선택했지만 계엄 이후에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 영화처럼 옛날에도 계엄령이 있었지만, 두 번 다시 없을 일인 것처럼 (한국이) 잘해왔다. 그런데 그걸 다 빠그라뜨리고… 국가 위상은 큰일 났고 경제도 한국은행에서 간신히 조정한다고 (한은 총재) 표정이 가관이더라.”
또 다른 부산의 30대 남성 참여자 역시 “적법한 절차를 어기고 비상계엄을 내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행정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탄핵하려고 했고, 너무 남발했다”며 당시 야당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진짜 국가에 간첩이 많다고 생각하고 이 시스템으로 도저히 못 잡겠다고 생각했다면 최후의 카드로 (계엄을) 발동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계엄에 대해선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에 대해서는 모든 참여자가 부정적인 견해였다. 한 30대 남성 참여자(부산)는 “계엄령 선포는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했지만 “법원 안에 들어간 것 자체는 범법이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참여자들이 계엄 선포 당일에는 많은 불안감을 느꼈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난 뒤에는 위기감이 낮아졌다고 했다. 경기 지역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계엄 당시 새벽 3~4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놀랐고 탄핵소추안 가결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집회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느 정도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지 몰랐다”고 했다. 또 다른 20대 여성 참여자(경기)도 “가결이 되면서 안도가 됐다”고, 경북 지역의 30대 남성 참여자도 “여론이 결국 탄핵 쪽으로 가 있는 걸 보면서 탄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계엄령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 놀랐다는 반응도 있었다. 부산의 20대 참여자는 “철없는 후배 친구가 계엄이 됐으면 학교 안 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심각성을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이걸 해프닝으로 넘겼다가는 사람들의 인식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향후 남용될까봐 걱정됐다”고 말했다.
■ 극우는 소수, 집회 참여자들에게 고마워

참여자 대다수는 이른바 ‘극우’로 불리는 세력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기의 30대 남성 참여자는 “극단적인 사람들은 사실 소수”라며 “그래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부산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현재 상황이) 큰 위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예전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지만 기술의 발달 때문에 더 잘 모이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의 30대 남성 참여자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되게 놀랍지 않았다”며 “계엄령 때문에 좀 더 부각되고 있지만 주변 사회에 저런 사람들이 다수 존재한다고 항상 생각한다”고 밝혔다.
‘20~30대 남성의 극우화’라는 프레임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참여자가 많았다. “제 주변에 있는 남성들에게서는 얘기를 못 들어봤다”(서울, 30대 여성), “전체가 아니라 너무 하나만 본다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이렇게 남성, 여성으로 얘기를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부산, 30대 여성)는 의견이 있었다. 다만 서울의 20대 남성 참여자는 “언론에서 남녀 대결 구도를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면서도 “실제 20대 초반 남자들이 보수 성향이 강해 틀린 말 같진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참여자는 “가장 충격적인 일이 폭동이었고, 주변에 보수 성향 친구들이 많아 초기에는 탄핵 반대였지만 시간이 흘러서 대부분 탄핵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성향에 개인주의가 강하며, 자기계발을 중시하고 집회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특징을 공유한 참여자들이 있었지만 모두 남성은 아니었고 여성도 있었다. 서울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납작하게 비판하고 나서는 것”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서울의 30대 남성 참여자 역시 “우리의 판단에 어떤 균질적인 기준이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며 “이념의 문제라기보다 마음의 문제이고 억울한 사람들끼리 묶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봤고, 집회가 중요한 시민 참여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경기의 30대 남성 참여자는 “(집회 참가자들이) 너무 고맙다”며 “최초 계엄령 때 저 사람들 덕분에 막을 수 있었던 것들도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부산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시간을 들이고 위험성을 감수하고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하시는 거니까 저는 조금 부채감이 있긴 하다”고 말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더 중대한 사안이 발생한다면 반드시 참여하겠다고 밝힌 이들도 있었다. 서울의 30대 남성 참여자는 “계엄을 했는데 막 시민이 죽는 등 민주주의에 대한 근간이 흔들린다 그러면 나갈 것 같다”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생업이나 육아 문제, 수도권 중심의 집회, 사태에 대한 인식 부족 등의 이유로 집회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 활동이나 서명, 청원, 후원 등에는 참여하겠다고 했다. 경남의 20대 남성 참여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보탬이 될 수 있는 게 후원이라 생각해 빠뜨리지 않고 하려고 하고 있고, 마음 한구석에서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거나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이들에게서 두드러졌다. 부산의 30대 참여자는 “그런 데 시간을 별로 쓰고 싶지 않다”며 “차라리 헬스장에 가겠다”고 했다. 경기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탄핵 시위를 처음 봤는데 일단 너무 무서웠다”며 “위협감을 느꼈고… 조금 사이비 종교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 저출생 최다 언급, 광장의 집회와 차이

한국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저출생·고령화를 꼽는 참여자가 많았다. 광장의 집회에서 다양성, 젠더, 기후, 노동, 안전 등 다양한 의제가 나왔지만 저출생은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던 점에 비춰보면 차이가 있다. 부산의 30대 남성 참여자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데 지금 너무 안 낳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청년층이 부양해야 하는 의무는 가중될 것이고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애를 낳고 키우는 입장에서 막 와닿는 정책들이 없다. 그들은 정말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비단 이 출산·육아뿐이겠나.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미래의 우리나라를 희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양육 환경에 대한 불만도 높았다. 경북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남편도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이전에 다닌 회사는 육아휴직이 곧 퇴사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경기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선배들이 일주일이라도 빨리 복귀했다는 걸 남겨놔야 회사에서 다 쓰진 않았구나 하고 생각한다고 해서 한 달 정도 일찍 육아휴직에서 복귀했다”며 “제도는 잘돼 있지만 실질적으로 쓸 수 있는 문화는 안 돼 있다”고 했다.
비수도권 거주자들은 지역소멸 이슈를 주요한 문제로 꺼냈다. 전북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제 또래들은 거의 다 서울, 경기 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부산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청년으로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나 경제적 지원이 수도권에 비해 아주 적다”며 “기업 자체가 서울 쪽에 많이 포진돼 있으니까… 일단 여기에서는 유아차 보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신산업이 됐든 반도체를 더 키우든 주요 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서울, 30대 남성), “경제위기를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다”(부산, 30대 남성) 등 경제를 주요 의제로 지목한 참여자도 많았다.
성평등, 노동 문제도 지적됐다. 경기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여성혐오나 여성에게 가해지는 살인·폭력 문제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별 임금 차별 같은 것들이 내 삶에 제일 큰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것이 해소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고졸 학생들이 산업 현장에 뛰어들었다가 건강에 이상이 생겨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규제 논의가 충분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 동료 시민엔 뿌듯, 정치권에는 절망
참여자들은 계엄 사태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시민들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경북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쓰레기도 다 치우고 질서도 지키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의식은 매우 높았다”고 했다. 인천의 30대 여성 참여자는 “(계엄 사태가) 안 좋은 사건이지만 국민들이 또 힘을 합쳐 집회에 계속 가고 또 이겨내겠지라는 생각이 있었다”며 “어떤 안 좋은 상황이 또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북의 20대 남성 참여자는 “응원봉을 들고 나타나는 저희 20~30대들처럼 한마음 한뜻으로 나오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사회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기둥이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동료 시민들에게 느낀 뿌듯함을 제외하고, 한국 사회 모든 분야에서는 부정적 전망이 우세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정치’였다. 경북의 30대 참여자는 “정치인들이 시민 수준을 못 따라온다. 공감 능력이 제로”라고 했다. 경남의 20대 남성 참여자는 “정치계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는 상황”이라며 “그래도 우리 국민들에 대해서는 기대를 좀 하게 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 것 같지 않다. 박근혜 때는 대통령 한 사람의 잘못이니까, 사람만 바뀌면 될 줄 알았다. 그다음 대통령(문재인)을 뽑았을 때 신뢰가 1차로 깨졌다.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르지 않다 확신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사람(윤 전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거는 너무 당연한 건데, 그렇다고 반대가 되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경기, 30대 여성)
참여자들은 현재 정치제도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경북의 20대 남성 참여자는 “한국 사회에 기대가 별로 없는데 거대 양당 체제의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며 “제도적 보완 장치나 정치문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냉소적으로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의 20대 여성 참여자는 “선거제도가 안 바뀌면 양대 정당이 계속 양대 정당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러면 다른 얘기가 들어설 여지는 없고, 그런 정치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거라는 희망이 없다”고 밝혔다.
광장은 두 쪽으로 완전히 나뉘어 한국 사회가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쪼개진 것처럼 보였지만, 인터뷰 참여자들의 언급에서는 최소한의 공유점을 생각보다 많이 찾을 수 있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참여자들도 있었다. “친척 형은 완전 반대쪽이었는데… 얘기를 계속하다 보니까 어느 날 갑자기 형이 ‘○○아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았던 것 같아’ 말을 하더라. 그때 되게 감동받았다.”(서울, 30대 남성)
참여자들의 인터뷰에서 찾아낸 공유 지점들은 계엄 이후 민주주의 재건 과정에서 ‘민주주의자 최대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의 의견과도 맞닿아 있다. 서 대표는 지난 3월 열린 인터뷰 결과 보고 토론회에서 “계엄 대 시민의 구도보다는 민주주의자 대 민주주의 파괴자의 프레임을 제안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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