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다 보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다. 문제는 선명한데 답은 쉽사리 풀 수 없는 상황 말이다. 기독교 공동체 메노파 여신자들에게 아침이면 몸에 상처가 난 채 깨어나는 일이 반복해 벌어졌다. 주교는 악마의 소행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남자들이 동물용 마취제를 써서 여자들의 의식을 잃게 한 다음 집단 강간을 한 것이다. 미리엄 테이브스의 소설 『위민 토킹』은 잔인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여자들이 벌인 ‘토론’을 주의 깊게 듣는다. 그래서 이 작품에는 이야기가 없고 대화만 있다. 대화 자체가 이야기다.

전직 메노파 신자였던 미리엄 테이브스는 실제 사건을 취재한 후 그 이후 여자들의 대책회의를 상상해 소설을 완성했다. 책에서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질문은 이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남아서 싸울 것인가, 떠날 것인가.’
글도 읽을 줄 모르고 종교적·가부장적 질서에만 복종해 살아온 여자들이지만 그들은 생각하고 견해를 나눌 줄 안다. 첫 번째 선택지가 가장 먼저 삭제된 후, 그들은 남아서 싸우는 것 또한 쉽지 않다는 결말을 내린다. 남으면 주교가 용서를 종용할 텐데 억지로 하는 용서는 그들의 복음에 어긋나니까. 게다가 싸우는 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상황은 더 나쁘게 풀릴 수도 있다. 오랜 대화 끝에 여자들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고,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고 싶어’라는 결론을 내린다. 떠나는 쪽으로 최종적인 의견이 모이지만 이번에는 어린 소년들을 데려갈 것인지 두고 갈 것인지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이것이 특수 상황에서만 필요한 지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덫에 걸려들었을 때, 예를 들어 퇴사를 고민해야 할 정도의 회사 생활이나 이혼을 고민해야 할 정도의 결혼 생활과 같이 중요한 자기 결정의 순간에 스스로에게 던져볼 질문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남아서 싸우기, 혹은 떠나기. 이 세 가지 말이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