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가 '버티기' 끝에 결국 퇴진 표명을 하자 '포스트 이시바' 후보들이 벌써부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총리에 오른 후에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 신사에 참배할 것이라는 극우 후보부터 부자(父子) 총리를 노리는 후보까지 각축전을 벌일 전망이다.
8일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현지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차기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하기 위한 후보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69) 전 자민당 간사장은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총재 선거에 출마할 생각을 굳혔다"고 밝혔다.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 20명 확보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당, 정부에서 (일하며) 여러 가지 경험을 한 내 모든 것을 국가에 바치겠다"며 총재 선거 출마 의향을 밝혔다. 외무상, 경제산업상 등을 역임한 그는 중의원 11선이다.
모테기 전 간사장은 이번 주 중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재건, 야당과의 협력 방안, 경제 정책 등을 발표할 것이라고 NHK는 전했다.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64) 관방장관도 이날 총리 관저에서 기자들의 관련 질문을 받고 "지난 총재 선거에서 함께 싸운 동료와 잘 상담하겠다"며 출마 의향을 시사했다.
이시바 정권의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을 지낸 그는 일부 구 기시다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총재 선거에서는 4위를 했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50) 전 경제안보상도 이날 오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베테랑도 젊은 의원도 '원(ONE) 자민'으로 확실하게 정리되는 체제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며 "(입후보를) 동료와 제대로 상담하겠다"며 입후보 의향을 밝혔다.
일본 언론들이 주목하는 유력한 후보 2명은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4) 전 경제안보상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44) 농림수산상이다. 당내에서도 이들이 포스트 이시바로 유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지난해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총리를 제치고 선두를 달렸으나, 결선에서 패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3위였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은 이시바 정권에서 자민당 총무회장직을 거절했다. 당 집행부와 거리를 뒀다. 이시바 정권 출범 이후 고물가 대책 등 대응을 자주 비판해왔다. 이시바 정권의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당내 보수계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그는 보수 세력인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지지하던 의원들을 기반으로 총재 선거에 나설 전망이다. 지난해 총재 선거에서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당 최고고문이 그를 지지했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을 지지하는 한 자민당 의원은 마이니치에 "차기 중의원(하원) 선거에서 보수층을 되찾아 당을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은 다카이치뿐"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러한 보수층의 지지는 양날의 검이기도 한다. 구 아베파 등을 둘러싼 자민당 파벌 비자금 사건의 불길이 아직 사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아베파가 전면에 서면 여론의 반발이 높아질 위험을 떠안고 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그가 당선될 경우 일본의 첫 여성 총리가 탄생하게 된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전 총리의 차남으로 후보 중 지명도가 높은 수준이다. 그가 당선되면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총리를 지낸 '부자' 총리가 나오게 된다.
그는 여론의 지지도도 높다. 민영 TBS 계열 JNN의 여론조사(6~7일)에서 차기 총리로 적합한 사람을 묻는 질문에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과 똑같이 19.3%의 지지를 받으며 공동 1위에 올랐다.
당내에서는 40대의 젊은 총리의 쇄신감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5월 농림수산상으로 취임한 직후 쌀값 폭등대책으로서 비축미 방출 확대를 주도하며 세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마이니치는 그가 "이시바 정권에서 요직을 지냈기 때문에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대한국 노선에 대해서도 이시바 정권의 큰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보이지만, 역사 인식 면에서의 후퇴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는 지난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일에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했다. 이날 13년 만에 '전쟁 반성'을 언급한 이시바 총리와는 결이 다른 행보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그는, 지난해 총재 선거 과정에선 총리가 되더라도 야스쿠니 신사에 계속 참배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카이치 전 경제안보상이 당선될 경우 한일 관계가 악화될 우려도 나온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당 소속 국회의원 20명의 추천인이 필요하다.
당칙인 총재선거공선규정에 따르면 중의원(하원)·참의원(상원) 의원이 1인 1표를 가지는 국회의원 표와 전국의 당원·당우 투표로 배분을 결정하는 '당원·당우'표를 합산해 총재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기간은 12일 이상이다.
현재 중의원·참의원 의장을 제외한 자민당 소속 국회의원은 295명이다. 닛케이에 따르면 국회의원 295표, 당원·당우표를 295표로 환산해 총 590표로 선거가 치러지게 될 전망이다.
'간이' 형식의 선거가 될 경우 국회의원 295표와 광역지방자치단체 도도부현(都道府?) 141표 등 총 436표로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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