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중국이 스위스 무역 합의를 통해 최소 90일간 115%포인트의 관세를 상호 인하하기로 합의하면서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피하게 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중국과 거래하는 기업들은 미뤘던 주문을 재개하고 월가에서는 침체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다만 산업계와 금융계 모두 이번 조치가 인플레이션 상승이나 성장 둔화 등 미국 경제의 근본적인 방향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여전하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중국에서 물품을 수입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기업들은 이날 미국 정부가 대중국 관세를 90일간 145%에서 30%로 낮추겠다고 발표하자 이 기간 동안 다시 재고를 확보하고 나섰다. 중국에서 제품을 전량 제조해 미국 코스트코 등을 통해 판매하는 미국의 소형가전 제조업체인 샤크닌자는 이날 그동안 출고하지 못했던 커피머신과 슬러시메이커 등 수백 개의 상품이 담긴 컨테이너를 반출하기로 결정했다. 마사지 기계 등을 판매하는 페라 세라피의 몬티 샤르마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에 “중국 생산을 재개했다”며 “40년 동안 일하면서 비용이 30% 증가한 것이 이렇게 기뻤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이날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진행한 무역 회담의 결과로 서로 관세율을 115%포인트 씩 낮추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은 우선 125%이던 대(對) 중국 관세율을 애초 4월 2일 수준인 34%로 되돌리기로 했고, 이 가운데 24%는 90일간 유예하기로 했다. 펜타닐 관세 20%는 유지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對) 중국 관세는 협상 전 145%에서 앞으로 90일 동안 30%로 낮아진다. 중국은 미국에 부과하던 125%의 관세를 10%로 낮춘다. 또 희토류 수출 규제 완화와 미 보잉기 인도 금지 등 비관세 조치도 해제하기로 했다.
산업계에서는 90일 이후 관세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을 우려해 유예 기간 동안 중국 수입이 급증할 가능성을 보고 있다. 화학물류협회의 에릭 바이어 회장은 “회원사들이 4월 이전에 재고를 쌓아두면서 현재 창고는 80~90% 차있지만 6월 중하순 께 10% 미만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이에 (90일 유예기간동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처럼 선박이 부족해지는 주문 열풍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교역 중단 위기는 넘기면서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도 다소 낮아졌다는 평가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의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라이언 스윗은 올해 경기 침체 확률을 50%에서 35%로 낮췄다. 월가의 대표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경기 침체 가능성을 45%로 추정했지만, 이번 미중 무역 긴장 완화로 이를 10%포인트 낮췄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기존 60%에서 45%로 줄였으며 앞서 경기 침체 확률을 75%로 전망했던 미시간대 경제학 교수인 저스틴 울퍼스는 전망치를 50%로 수정했다.
월가와 산업계는 중국과의 무역 합의가 미국 경제에 대한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는 데 공감하고 있지만 무역 전쟁에 따른 기업들의 수익성 감소 위험은 여전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는 통상 30%의 관세율이라면 5~10%의 최종 판매가격 인상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들이 비용을 떠안으면 수익률이 낮아지고, 가격을 올리면 판매 감소 요인이다. WSJ는 애플을 지목해 “이미 고가인 아이폰 가격이 오르면 애플의 다음 아이폰 생산 주기가 지연되거나 더 많은 고객이 저가 모델로 전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성장 둔화나 인플레이션 역시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관세율이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무디스애널리틱스는 최근 영국과의 협정, 중국과의 제네바 협상 결과를 반영하면 미국의 실효관세율이 직전 21.3%에서 13.7%로 낮아질 것으로 봤다. 다만 이는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 취임전 2.4% 보다 10%포인트 이상 높고 1910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무디스 애널리틱스의 마크 잰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 정도 관세라면 내년 이 맘 때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1%포인트 상승하고 국내총생산도 1%포인트 줄어들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에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서도 이번 미·중 합의에도 불구 금리에 대한 관망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신호가 나왔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연준 이사는 이날 “관세가 이번에 발표된 수준과 가깝게 계속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무역 정책은 여전히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며 “관세율은 연초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인플레이션 상승과 성장률 둔화를 포함한 경제 여파가 계속된다는 것인 사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의류신발협회(AAFA)의 스티브 래마 회장은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과의 일시적 협상이 아니라 모든 무역 상대국과의 장기 협상 타결”이라며 “그런 환경이 조성돼야 기업들은 장기 무역과 투자, 공급망 재배치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