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전주엔 부채가 있다

2025-07-03

 때 이른 무더위에 예술인들이 부채를 들고 나섰다. 여름을 상징하는 부채를 통해 전통문화와 현대예술의 접점을 탐색하고, 우리지역 예술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알리자는 취지다.<편집자주>  

 ▲전주부채문화관 이수자 초대전, 국가무형유산 선자장 이수자 장현정

 전주부채문화관은 국가무형유산 선자장 이수자인 장현정의 첫 번째 개인전을 15일까지 초대전으로 개최한다. 장현정은 국내 유일 국가무형유산 선자장인 김동식의 며느리로, 합죽선 이수자로는 국가무형유산과 각 지역의 무형유산을 통틀어도 여성으로서는 유일하다. 이로써 김동식 선자장은 아들 김대성에 이어 며느리까지 두명의 이수자를 두게 된 셈이다.

 며느리 장현정이 결혼 후 시아버지와 남편을 돕다 자연스럽게 합죽선 만드는 기술을 익혀 이수자가 됐을 때 김동식은 “합죽선으로 여성 이수자는 니가 최초다”며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장현정 이수자는 이번 전시에 30cm 길이에 대나무살이 40개 들어가는 기본 사이즈의 합죽선을 기본으로 윤선과 승두선, 미니 합죽선 등 다양한 부채를 선보이고 있다.

 자동차 바퀴처럼 둥글다 해서 ‘윤선’은 원래 해를 가리는 용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윤선은 동그란 모양에 부채살이 더해져 해를 꼭 빼닮았다. 해로 해를 가리는 형국이니 아이러니하다. 스님 머리처럼 둥글다 해서 ‘승두선’은 시간과 내공이 필요하단다. 완벽한 작품을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미니 합죽선은 장현정 이수자의 야심작이다. 그는 “작고 가벼우며 휴대하기도 편해, 더울 때 가지고 다니며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가방에 악세사리처럼 달고 다녀도 이쁘다”며 “현대인들이 합죽선을 가까이 접할 수 있게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부채에 낙죽으로 다양한 문양을 새긴 것도 눈에 띈다. 불에 달군 인두를 대나무에 지져가면서 장식적인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것인데, 장 이수자는 국화, 매화, 포도 등을 새기는 낙죽에도 일가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연꽃문양을 부채에 새기는 것은 선례를 찾아보기 힘든 장 이수자만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지고 있다.

 장 이수자는 “현재 윤선과 승두선에 2가지 버전으로 연꽃문양을 새기고 있는데 더 다양한 문양을 고민하고 있다”며 “12지신 등 의미가 있고 대중에게도 친숙한 문양을 연구해 이후 작업에 적용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교동미술관 기획전 ‘바람, 바램이 될 수 있도록’

 “한 줄기 바람이 더없이 간절해지는 계절, 교동미술관은 고요한 바람결 위에 사람들의 오랜 염원을 실어보냅니다.”

 전주 교동미술관이 본격적인 여름 시즌에 맞춰 전통 부채와 민화를 매개로 인간의 염원을 담아낸 기획전 ‘바람, 바램이 될 수 있도록’을 13일까지 본관 2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무더운 계절, 한 줄기 바람이 더욱 절실해지는 순간에 ‘바람(風)’과 ‘바램(願)’의 의미를 겹쳐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정서와 상징을 되새기고자 기획됐다.

 전시에는 김완순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김학곤과 이홍규 작가의 작품이 더해져 총 14점의 부채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단선과 합죽선 위에 화조화를 중심으로 부귀, 장수, 평안, 행복 등 인간의 보편적 소망을 형상화했다. 전통 부채는 단순한 여름 도구를 넘어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마음과 기원을 담아온 상징적 매체다. 전시 작품들은 민화의 정서와 상징을 바탕으로 바람결 속에 깃든 인간의 마음을 포착하고 있으며, 이는 자연과 인간, 사물과 감정이 교감하는 전통 미감의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완순 교동미술관 관장은 “바람이 일으키는 찰나의 시원함이 그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간절한 바램들이 관람객에게 따뜻하게 전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미술협회 전주지부 여름 부채·기획 초대전 ‘전주는 풍류다’

 한국미술협회 전주지부(지부장 송규상)의 여름 부채·기획 초대전 ‘전주는 풍류다’ 전시가 8일부터 13일까지 청목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전국 교류전 형식으로 치러지며, 특히 2036 하계올림픽 유치 기원을 담아 마련된 특별한 전시다. 총 86명의 작가가 참여하며, 부채작품 93점을 만날 수 있다.

 한지의 본고장이자 조선 시대 선자청이 있었던 전주는 부채 제작과 시·서·화 풍류의 중심지로서 여름 부채의 명맥을 이어온 고장이다. ‘풍류다(風流多)’는 바람(風)과 물의 흐름(流), 즉 자연의 리듬과 예술의 감성을 뜻하는 전통적 미학이다. 이번 전시는 역사적 전통을 기반으로 전주 부채에 대한 고찰과 재창조를 통해 지역 예술의 품격과 정체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전국의 유명 작가들과 전주 지역 미술인이 함께 참여해 전주 한지로 제작된 아름다운 부채 위에 저마다의 미감과 주제를 담았다. 부채는 단순한 전통 소품을 넘어, 회화와 디자인이 결합한 예술의 매개체로 ‘생활 속 예술’로 확장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송규상 지부장은 “전통의 결을 따라 흐르되, 현대의 감각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통해 전주의 풍류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를 함께 느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2036년 하계올림픽을 향한 전주와 전북과 대한민국의 염원으로 부채에 혼을 담았다”고 밝혔다. 

김상기 기자

저작권자 © 전북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