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사
제3부. 노태우의 승부수 ‘3당 합당’
7회. 김영삼의 합당 제안 ‘민정당 간판 내려라’

김영삼의 소련 방문, 극진히 배려한 노태우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합당을 결심한 마지막 계기는 소련 방문이었다. 1989년 6월 1일 김영삼의 소련 방문은 두 가지 점에서 합당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첫째, 노태우 정부의 극진한 배려가 김영삼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당시 소련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급격한 개혁(페레스트로이카)·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에 여론의 관심이 높았다. 그래서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평민당 총재 모두 소련 방문을 희망했다. 노태우는 김영삼을 밀어주었다.
노태우는 고르바초프에게 주는 친서를 김영삼에게 주었다. 정부 공인 인증을 받은 셈이다. 노태우는 동시에 박철언 보좌관을 통해 정치자금 20억원과 여비 2만 달러를 주었다. 김영삼이 모스크바 방문 중 북한의 대남 총책 허담 노동당 비서를 만나는 것을 사전에 양해해 주었다.
결정적으로 김영삼의 소련 방문에 맞춰 노태우는 서석재 민주당 사무총장을 석방해 주었다. 김영삼의 측근 서석재는 1989년 4월 14일 강원도 동해시 보궐선거를 총지휘하고 있었는데, 공화당 후보 매수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후보 매수 사건은 김영삼이 둔 무리수의 결과였다. 김영삼은 노태우가 3월 20일 김대중의 묵인 아래 ‘중간평가 유보’를 선언하자 당황했다. 그래서 4월 동해시 재·보궐선거를 ‘사실상 중간평가’라고 규정하고 ‘노태우 정권을 응징하겠다’는 과잉 의지를 보였다.
이런 김영삼의 의지를 읽은 서석재가 극약 처방에 나선 것이 후보 매수였다. 김영삼은 미안한 마음에 직접 박철언 보좌관에게 ‘석방’을 호소했다. 김영삼은 박철언과 물밑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서석재 총장, 그 사람 참 좋은 사람인데, 요즘 고생 많이 하고 있나 봐”라고 말했다. 박철언은 “이 정도면 강력한 구명 요청”이라고 판단, 노태우에게 ‘김영삼의 소련 방문 전 서석재 석방’을 건의했다. 김영삼은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