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랑
서정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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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를 옹호해 온 서정춘. 그의 시집답다. 시집 제목도, 시집을 낸 출판사 이름도 한 음절씩이다. 그래도 못 알아듣겠냐는 듯, '시인의 말'에서 재차 강조했다.
"시간보다 재능이 모자라 더 짧게는 못 썼소."
엄살이다. 재능이 진짜 없는지는 모르겠고, 여기서 더 짧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짧아졌다고, 시의 세계, 시의 그릇이 작은 건 결코 아니다. 증거 하나.
"나 안 간다// 거기까지가// 여기까지다"
'극락과 천당' 전문이다. 시집에 실린 31편 가운데 가장 짧은 시인데, 뜻이 명료하진 않다. '거기'는 어디고 '여기'는 또 어딘가. 수고로운 그러나 즐거운 궁리를 거듭해야 한다.
'홍매설(紅梅說)'은 흥미진진했다.
"첫, 보시기에/ 꽃도/ 불이시니/ 불티 먹은/ 꽃가지에/ 불이시라/ 남의 님/ 넘보듯/ 불콰하시니/ 지난날/ 물불 없이/ 사르다 간/ 불이시라"
꽃도 일종의 불이라고 일찌감치 전제한 후 한눈팔던 누군가의 민망함, 한 철 혹은 한평생 잘 놀다 간 누군가를 상상케 하도록 시상을 전개했다.
'풍월 2'도 한참 읽었다.
"구공탄/ 흙덩이// 장례비/ 구백 원// 다비장/ 아궁지"
역시 시는 길 필요가 없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