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작가 정은혜가 만든 ‘가족’

2025-08-22

“안녕하세요. 저는 ‘니얼굴 은혜씨’ 작가님이고,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정은혜 작가가 또박또박 인사했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 작가는 화가이자 배우다. 지금까지 캐리커처를 그린 인물만 5000명이 넘는다. 이를 모아 국내외에서 여러 차례 전시회도 열었다. 한때 세상의 시선을 피하느라 방에 틀어박혀 뜨개질만 하던 ‘은혜씨’는 이제 없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 구독자는 27만명이 훌쩍 넘는다. 지난 5월 지적 장애가 있는 조영남씨와 결혼식을 올려 많은 응원을 받은 그는 최근 SBS 예능 프로그램 <동상이몽2- 너는 내 운명> 출연으로 또 한번 화제가 됐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웃고 울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 부부의 자립과 사회적 지원, 가족 돌봄 문제까지 되돌아보게 했다.

결혼 후 가족을 떠나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생활하는 그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 작가와의 인터뷰에는 그의 어머니인 장차현실 작가와 아버지 서동일 다큐멘터리 감독, 그리고 남편 조씨도 함께했다. 인터뷰 내내 정 작가는 유쾌했다. 느긋한 말투와 달리 조씨에겐 “오빠 고마웡∼” 연신 콧소리를 내며 아양을 떠는가 하면, 카메라 앞에서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면서도 사진기자 질문엔 “아유, 네이버에 찾아보세요”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는 고백한다. 그림이 “나의 전부”라고. “앞으로 뭐 하고 싶어요” 물었더니 “꿈을 다 이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이 자신처럼) 일하면서 돈도 벌고, 연애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했다.

- 가족 소개 좀 해주세요.

정: “훌륭한 엄마지, 스물여섯 살 때부터 장애인을 키운 엄마로 EBS 방송에도 나왔었고.”

장차: “네가 나는 좀 무시하는 거 아니었어?”

정: “아유, 그러면 그런 줄 알지∼.”

미대 출신 만화가인 장차 작가는 스물여섯에 은혜씨를 낳았다. 딸이 다운증후군 판정을 받았을 때의 심정을 “롤러코스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랐다가 그냥 거꾸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남편과는 정 작가가 여섯 살 무렵 이혼했다. 매번 만화 연재 마감에 쫓기며 장애인 딸과 억척스레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먹자>를 출간하기도 했다. 2004년 서 감독과 경기 양평에서 한집살이를 시작한 뒤 이듬해 아들 은백을 낳았고, 2008년 결혼식 대신 ‘가족식’을 열었다.

장차: “아이 키우면서 만화 마감하고 그러느라 정신없이 살았어요.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그랬는데 어느날 다큐 작업을 하던 남편이 (취재하러)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눈이 맞았어요.”

정: “엄마가 꼬신 거예요. 양수리에 이사 갔을 때, 아빠는 제 동생을 낳아서 가족이 됐어요. 은백이가 2005년 5월 태어났어요. (서울 서대문구) 은혜산부인과에서. 은백이 낳고 엄마가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정 작가는 ‘오빠’라고 부르던 서 감독을 “이제 다 컸으니 아빠해도 돼”라며 ‘아빠’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행복한 날들이 계속될 줄 알았지만, 20대가 된 정 작가의 세상이 캄캄해졌다. 타인의 시선은 ‘강박’이 됐고,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정 작가는 책 <은혜씨의 포옹>에서 이때의 절망을 ‘동굴’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기억나요”(기자) “힘들었지. 방 안에만 있었으니까.”

그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건 그림이었다. 장차 작가는 당시 생계를 위해 화실을 운영했는데, 정 작가에게 하루는 잡지 속 여자 향수 모델을 그려보게 했다. “그린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사람 얼굴을 이렇게 잘 그리네…”

- 처음 그림 그린 날 기억해요.

정: “2013년 2월23일.”

정 작가는 12년 전 그날을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2016년 8월부터다. 경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 캐리커처를 그려주는 ‘니얼굴’이란 이름의 노점을 열고 수많은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다시 연결됐다.

- ‘니얼굴’이란 이름이 재밌습니다.

장차: “부스 이름을 뭘로 할까 하고 있는데, 마침 중학교 윤리 선생님인 조카가 집에 놀러 왔어요. ‘요즘 애들이 많이 쓰는 말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니 얼굴’ 그러더라고요. 아이들이 쓰는 ‘니 얼굴’은 이런 거예요. 예컨대 ‘너 얼굴이 왜 그래. 재수 없어’ 이러면은 상대방이 ‘니 얼굴’ 이러는 식이에요. 예전에 우리들이 쓰던 ‘반사’ 같은 의미죠.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재밌었어요. 은혜의 작업은 예술 활동이에요. 우리가 예술이라고 하면 권위 있는 뭐 이런 걸로 어렵게만 생각하잖아요. 반말처럼 들리는 ‘니 얼굴’이란 세 글자가 그런 것들을 깨버리는 통쾌함이 있었어요. 그래서 니 얼굴로 정했어요.”

- 몇 명 정도 그렸을까요.

장차: “첫 손님이 5000원 주고 그림을 가져가는데, 그 손님 뒷덜미를 잡고 싶었어요. 캐리커처는 완성되면 가져가버리니까 그림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해상도가 낮아서 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동식 스캐너를 놓고 완성된 그림들을 다 스캔했어요. 프린트하면 원본처럼 나오니까 전시도 할 수 있었죠. 5000장 정도 있어요. 제가 그걸 관리하는 매니저예요. 덕분에 ‘딸카’(딸 카드) 쓰는 엄마가 됐죠.”

- 특별히 기억나는 분들 있으세요.

정: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해요. 그림을 그리면 그 사람들이 저를 기억해주고 생각하니까요.”

정 작가는 현재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이곳에서 매일 발달장애인 작가 14명과 함께 그림 작업을 하며 월급을 받는다. 지난해 수상한 포니정 영리더상의 상금을 이 센터 계약금으로 썼다고 한다. 센터 근처에 경기 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가 운영하는 ‘권리 중심 중증 장애인 맞춤형 공공 일자리’ 일터도 있다. 여기엔 16명의 장애인들이 근무한다. 정 작가의 부모가 다른 장애인 부모들과 함께 ‘장애가 있다=불쌍하다’는 등식 대신 일자리라는 다른 해법을 찾은 덕이다.

- 작가님한테 그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 “…, 나의 전부.”

- 영남씨 그림은 어때요.

정: “야채나 채소를 주로 그려요. 오빠 그림 요즘 많이 좋아졌어요. 오빠는 뭐든지 잘하는 사람이에요. 밝고 웃음이 많아요. 저를 만나기 전에 오빠는 양평 천사의 집(시설)에 있었어요. 2023년 2월1일 날 정확해요. 그날 오빠가 (일자리에) 들어왔어요. 세 분이 왔는데 그중에 오빠가 있었는데, 처음부터 나를 좋아했고 관심을 보였어요. 오빠가 먼저 고백했어요. ‘은혜 작가님 저랑 결혼해 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좋다’고 대답했어요. 그리고 꽁냥꽁냥 연애질만 했어요.”

- <동상이몽> 출연으로 화제가 되셨어요. 반응이 어떤가요.

정: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진 찍자 하는 분도 많고, 사인해달라고 하는 분들이 더 많죠.”

- 사람들이 알아보면 힘들진 않나요.

정: “뭘 꼭 그렇게, (저) 좋다고 하는데 그럴 순 없죠.”

- 독립하셨잖아요. 가족들 생각 안 나시나요.

정: “네. 아침에 오빠가 일어나고, 저도 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이모님이 오셔서 밥 끓여 주시면 먹고 출근해요. 같이 그림도 그리고요. 근데 저 혼자 그리는 게 아니에요. 동료들과 같이 그림 그리고 돈도 벌어요.”

장차: “지금 말한 이모님은 장애인 활동지원사예요. 요샌 제가 얘네 집에서 뭐 좀 해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뒤에서 ‘안 가’ 이런다니까요. 저번에는 동생이 유튜브 찍는다고 자고 간다고 그러니까 ‘왜 자고 가’ 그래요.”

정: “여기 신혼집인데 우리 집에서 자는 거는 좀 아니잖아요.”

-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엔 일상사가 가감없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찍게 되셨어요

장차: “어느 날 은백이가 누나한테 질문 하나를 툭 던졌어요. ‘누나, 우리는 왜 살아야 된다고 생각해’라고 했더니, 뜨개질하고 있던 은혜 대답이 ‘엄마한테 물어봐’였어요. 그랬더니 동생이 ‘아니 엄마 말고 누나가 대답해’ 이런 식인데 그 영상이 갑자기 떴어요. 관심을 좀 받으면서 주제도 재미있어지고, 그렇게 됐죠. 이번에 <동상이몽>을 촬영하면서 은백이 속마음도 알게 됐어요. ‘나는 왜 이런 가정에서 태어났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유튜브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속에 힘들었던 문제도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 새아버지 성을 따라 정은혜에서 서은혜로 바꾸기로 하셨다고 하던데요.

정: “제가 정씨잖아요. 저는 친아빠는 죽었다고 생각해요. 찾고 싶지 않아요. 그냥 오빠랑 팔팔하게 살고 싶어요.”

장차: “그래도 널 낳아줬는데, 그런 마음을 가지면 네가 힘들어. 아빠도 어쩔 수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나중에 우리 또 얘기해 보자.”

- 방송에서 아이를 갖고 싶지만 ‘장애인 아이를 낳을까봐 걱정된다’는 얘기를 듣고 울컥했습니다.

정: “아기 안 가지기로 했어요. 오빠가 나이도 많고.”

옆에서 얘기를 듣던 남편 조씨는 “장모님한테 떠맡길 수 없지 않냐. 돌아가시면 우리가 뭘 어떻게 하나”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정 작가는 그 마음을 이런 글로 남겼다. “어제 오빠랑 같이 동상이몽 늦게까지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빠도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8월5일 정은혜 페이스북)

- 두 사람이 가족 도움 없이도 온전한 독립이 가능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합니다.

장차: “각각 개인의 활동지원사들을 쓰는데 시간이 정해져 있는 데다 야간은 지원이 안 되어요. 활동 지원 선생님이 아침에 오셔서 출근시켜주거든요. 저녁에도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둘만 있으니 불안하죠. 이건 두 사람의 생활이 돌아가게 제가 다 짜놓은 거잖아요. 내가 없을 때 이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어야 해요. 자립 지원이라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서 코디네이터 한 사람이 장애인 4명의 한 달간 삶을 코디해 주는 거예요. 활동 지원을 잘 받는지 일자리엔 잘 가는지 생활 전반을 챙겨주는 겁니다. 이런 코디네이터제도 예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제(13일) 복지 혜택을 신청이 아닌 자동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했거든요. 지금 우리는 모든 복지서비스가 신청 위주예요. 뻔히 있는 서비스도 몰라서 신청을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있는 서비스를 쓰게만 해주자는 겁니다. 몰라서 못하기도 하지만 예산을 한정적으로 해놔서 신청한다고 다 되지도 않지만요. 은혜와 영남은 34년, 42년을 장애인으로 살았는데 일년에 수입이 좀 있으면 의료급여를 바로 잘라버리는 식이에요. 서비스를 신청하면 한참 걸리는데 자를 때는 순식간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자리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1년짜리 일자리가 아니라요. 저희가 확보한 일자리는 매년 종료되고, 평가를 거쳐 선발되어야만 다시 일을 할 수 있어요.”

- 집에 이모님이 오시잖아요. 더 필요한 거 있으세요.

정: “저희가 부탁하면 다 해주세요. 너무 고맙죠.”

장차: “활동지원사 지원 시간이 늘어나면, 장애인들이 스스로 생활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켜줄 수 있어요. 지금은 그것까지 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요. 2시간 정도 있으니까 할 일만 얼른 해놓고 가야 해요. 가사 지원, 신체 활동 지원, 사회 활동 지원 등 세 가지 지원이 있거든요. 은혜랑 영남씨는 가사 지원하고 사회활동 지원을 받고 있어요.”

- 어머니가 경기 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 회장을 맡고 계시죠.

장차: “은혜가 스무 살 됐을 때 힘들어하고, 그런 은혜를 보면서 저도 몸이 아프면서 뇌졸중이 왔어요. 도움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면사무소를 찾아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뭘 써내라고 해서 잔뜩 쓰고 왔는데, 한 달 후에 통장에 국가의 지원이 드디어 찍혔더라고요. 한 달에 3만원. 처음엔 슬프다가 나중에 진짜 화가 나더라고요. 그냥 죽으라는 얘기 같더라고요. 그래서 단체를 하나 만들어서 운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국가가 안 해주면 부모들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어요.”

- 작가님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원하는 거 있으세요.

정: “꿈을 다 이루었기 때문에 저는 없어요. (장애인들이) 일하면서 돈도 벌고 좋은 사람 만나 연애도 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좋겠어요.”

장차: “일하면 월급을 받잖아요. 그러면 장애연금이 깎여요. 그래도 연금을 포기하고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이들은 연금 까먹는 그런 존재로 사는 게 아니라 당당히 일하고 싶은 겁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에 최저시급 제외 조항이라는 게 있거든요. 최저시급을 안 줘도 되는 사람들을 국가가 명시해 놓았는데, 이 사람들인 거예요. 그냥 집에만 있으라는 겁니다.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지금 두 사람이 일하게 된 것도 경기도 일자리 사업 때문인데요. 자꾸 예산을 줄이려고 합니다. 30명이 1년 일하는 예산, 3억5000만원이에요. 이 돈이면 30명을 살립니다. 요즘 양평 강가에 덱을 깔았는데, 이 사업에 100억원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예산의 100분의 1만 장애인 일자리 예산으로 쓰면 30명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이 문제는 장애인 한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가족 전체의 삶을 살리는 일입니다.”

*정은혜 작가는

2016년 경기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그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린 인물만 5000명이 넘는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했고, 그의 일상을 담은 다큐 영화 <니얼굴>을 찍었다. 2017년 ‘천 명의 얼굴전’, 2021년 ‘개와 사람전’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회를 개최했다. 2019~2020년 서울문화재단 잠실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활동했고, 책 <니얼굴> <은혜씨의 포옹>을 출간했다. 2024년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데 기여한 공로로 ‘포니정 영리더상’을 수상했다.

▼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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