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

2025-05-07

2020년대 들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관심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 하락세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하고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20세기 초 러시아 공산당에서였습니다. 당의 노선에 위배되는 발언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비판한 것입니다. 그 뒤로 이 말은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는데,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90년대부터라고 합니다. 지금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말은 “인종·성별·장애·종교·직업 등에 관한 편견이나 차별이 섞인 언어 또는 정책을 지양하려는 신념, 혹은 그러한 신념을 바탕으로 추진되는 사회운동”을 뜻하며, 줄여서 ‘PC’ 혹은 ‘PC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가치판단 과도한 주관적 언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

한국 정치판 만연한 언어 타락

당장의 손익 넘어 근본적 폐해

그런데 영어의 ‘political correctness’를 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올바름’이라는 우리말은 도덕적 및 윤리적인 의미를 강하게 포함합니다. 하지만 영어의 ‘correct’는 ‘정확한’과 ‘적절한’이라는 뜻이 우선이고 ‘올바르다’는 뜻은 부차적이며, ‘올바른’이라는 뜻으로 새기더라도 ‘political correctness’는 ‘정치적 올바름’이지 ‘도덕적 올바름’이 아닙니다. ‘정치적 정확·적절’과 ‘도덕적 올바름’ 사이의 거리는 매우 멉니다. 이 거리에서 PC주의에 대한 비판이 나옵니다.

PC주의와 반PC주의 사이의 논쟁을 보면서 저는 기원전 5~6세기의 공자님 말씀을 떠올리게 됩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논어』에 나오는 ‘정명(正名)’이라는 말입니다. 제자인 자로가 질문합니다. “위나라 임금이 스승님에게 정치를 맡긴다면 스승님은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합니다. “반드시 이름을 바르게 하겠다(必也正名乎).” 정명이란 무엇인가는 유교 사상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서 훗날에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켰는데, 오늘날의 정치적 올바름과 겹쳐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그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공자가 편찬한 책 『춘추(春秋)』입니다. 노나라의 역사서를 공자가 편집하여 저술한 『춘추』는 유교 사상의 중요한 경전으로서 ‘춘추필법(春秋筆法)’이라고 부르는 그 기술 방식이 특이합니다. 이 기술 방식은 기술하는 자의 가치판단을 적극적으로 반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살(殺)’과 ‘시(弑)’의 구별입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것은 살해가 아니라 시해라 표현하고, 임금 자리를 찬탈한 자를 죽인 것은 시해가 아니라 살해라고 표현합니다.

이 기술 방식에 대해서는 유교 사상의 맥락에서나 역사학적 맥락에서 많은 논의가 가능한데, 아주 간략하게 말하자면, ‘살해’는 중립적 표현일 수 있고 ‘시해’는 가치판단이 반영된 표현이므로 두 표현이 동시에 성립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시해라는 가치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살해라는 표현만 사용하게 되겠지만, 동의하는 경우에는 살해라는 중립적 표현의 사용을 거부할 수도 있고 허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저의 생각은 가치판단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중립적 표현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가치판단의 반영은 주관적 입장을 같이하는 사람들에게만 공유된다는 제한도 있고, 더욱 중요하게는 때로 그 반영이 객관적 사실을 왜곡할 염려가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1986년에 발표된 임철우의 중편소설 ‘볼록거울’이 생각납니다. 총학생회 구성 문제를 놓고 학생들이 중간고사 거부 운동을 벌이기로 했는데, 중간고사는 다음 날부터 시작될 예정이고 이날 밤 200여명의 학생들이 철야 단식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당직 근무를 맡은 조교가 학교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단식 농성을 한다는 학생들이 라면을 사 먹으면서 하는 대화를 듣습니다. 한 학생이 먹으면서 단식을 한다는 건 궤변이라고 지적하자 다른 한 학생은 그것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합니다.

먹으면서 단식한다고 주장하는 행위, 혹은 단식한다면서 먹는 행위를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것. 이것은 주관적 가치판단이 언어 사용에 개입하여 객관적 사실을 왜곡해버리는 극단적 예가 됩니다. 이때 언어는 거짓과 타락으로 치달리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오늘의 한국 정치판에서는 너무나 많이 나타납니다. 언어의 타락이야말로 당장의 정치적 손익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요?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어 봅니다.

성민엽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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