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국회 청문회에서 “리박스쿨 교재 아닌가” 지적
저자는 “모두 팩트에 기반… 리박스쿨과 무관”
2024년 1월 출간돼 국군 장병은 물론 어린이,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널리 읽혀 온 책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가 최근 국방부 진중문고에서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는 “장병 교양 증진 및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합한 표현이 일부 포함됐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이 책이 이른바 ‘리박스쿨’의 교재로 쓰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더불어민주당 일각의 주장 때문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역사 교육단체 리박스쿨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재평가와 재조명에 앞장서 진보 진영으로부터 ‘어린이들에게 극우 역사관을 심어주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7일 국회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국회 교육위원회가 주최한 리박스쿨 청문회에서 민주당 정을호 의원(비례대표)은 증인으로 출석한 손효숙 리박스쿨 대표에게 질의하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책자를 들어 보였다. 그러면서 해당 책을 읽은 어린이들이 소감을 밝히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한 어린이는 “(6·25 전쟁 발발 후) 이승만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호통을 치며 도와달라고 한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었을까를 먼저 생각했고…”라고 말했다. 또다른 어린이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알면 알수록 창조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게 은혜를 베푸셔서…”라고 말했다. 책이 아니고 그 독후감 내용의 일부 표현을 문제로 삼은 셈이다.

정 의원은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했다. 정 의원에 따르면 책은 한국이 1948년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며 비로소 신분제가 폐지된 것처럼 묘사했는데, 그가 국사편찬위원회에 문의했더니 ‘신분제 폐지는 1894년 이뤄져 1948년 이승만정부 수립과는 상관이 없다’는 검토 의견을 받았다는 것이다.
정작 책을 확인한 결과 ‘1948년 신분제가 폐지되었다’는 구절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정 의원은 “허위투성이 역사 왜곡 도서”라며 리박스쿨이 늘봄학교 강사를 양성하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를 교재로 썼는지 물었다. 이에 손 대표는 “아니다”라며 “필요로 하시는 분들을 위해 책을 사무실에 구비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달 들어 8일 국방부는 ‘2024년 보급 진중문고 폐지’라는 제목의 문서를 군에 하달해 각급 부대에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책자를 모두 회수한 뒤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이제까지 배포된 책자 수는 대략 9900여권인 것으로 전해졌다.
저자인 장삼열 박사(육사 35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에 대해 장 박사는 “전쟁사 연구는 물론 소말리아와 이라크 참전 등 경험을 토대로 다수 전문가의 의견과 역사적 팩트(사상)를 종합해 집필했으며, 최고 전문가의 윤독과 감수를 통해 완성된 산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출간 후 줄곧 일반 서점에서도 베스트셀러로 판매되고 있는데, 진중문고 폐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그에 따르면 국방부 관련 담당자에게 폐기의 구체적인 사유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내부에서 결정한 것이라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국방부는 책이 6·25 당시 전쟁 지도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을 지나치게 미화한 점, 책 추천사를 쓴 인사들 중 ‘극우’로 알려진 인물이 포함된 점 등을 문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장 박사는 “이승만정부의 ‘농지개혁’이나 전쟁 지도에 관한 기술은 모두 관련 근거와 사실에 기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책과 리박스쿨의 연관성에 대해선 “나도, 책도 리박스쿨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부인했다.
진중문고 추천사를 확인해보니 극우 인사로 볼 만한 사람은 없고 대부분 예비역 장성이었다. 추천사 또한 서평과 책의 일부 내용을 언급한 것일 뿐 특이한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진중문고 폐기 결정 과정에서 관련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정치적 외압은 없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국방부 조치는 벌써 다른 공공도서관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지난 14일 광주광역시는 “시내 공공도서관에 있는 역사 왜곡 논란 도서 7종을 폐기한다”며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를 포함시켰다. 그러면서 “리박스쿨 사건 청문회에서 논란이 된 책”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사실 여부엔 관심 없고 그저 논란만 피해 가면 된다는 뜻처럼 들린다. 장 박사는 “개인적으로 명예가 훼손될뿐더러 출판사에도 손실을 가져오는 것이라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심경을 밝혔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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