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행복합니다”…희망을 노래하는 스승

2025-05-01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노부부가 있다. 이들은 평생을 몸담았던 교직을 떠났으나 교육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 박물관을 만들고 30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다. 스승의 날(15일)을 앞두고 경기 김포에 있는 ‘덕포진 교육 박물관’을 찾았다.

붉은 벽돌로 지은 3층짜리 건물. 입구엔 옛 학교 앞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 종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창문 틈 사이로는 ‘학교 종이 땡땡땡’ ‘봄나들이’ ‘산토끼’ 같은 정겨운 동요 소리가 들렸다. 4월 하순 주말에 찾은 덕포진 교육 박물관에선 음악 수업이 한창이었다.

“앞이 안 보이는 나도 이렇게 힘이 넘치는데, 왜 이렇게 다들 힘이 없어?”

수업이 펼쳐진 곳은 1950∼1960년대 옛 풍경을 그대로 재현한 ‘3학년 2반’ 교실. 교단에 서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학생들을 혼내는 이는 이인숙 관장(78)이다. 이 관장은 1992년 교직에서 물러난 전직 초등학교 교사다. 교직 생활 22년 만에 학교를 떠난 것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시력을 잃게 되면서다. 당시엔 사랑하는 아이들과 이별하고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다는 생각에, 집 안에만 틀어박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절망에 빠진 아내를 일으킨 것은 남편 김동선 관장(84)이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 관장은 “내가 학생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겠다”고 아내를 달랬다. 김 관장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자 서울 아파트를 팔고, 퇴직금까지 털어 1996년 박물관을 세웠다.

김 관장이 박물관에서 가장 신경 써서 마련한 곳은 바로 1층의 3학년 2반 교실이다. 옛 교실을 재현하고자 폐교에 가서 책걸상과 난로, 조개탄 등을 구해다 놓고, 노래와 시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풍금을 들여놓았다. 이 관장은 사고를 당했을 당시 맡았던 3학년 2반 교실에서 관람객을 학생으로 앉혀놓고 풍금을 치고 노래를 부른다.

김 관장은 “몽당연필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교직 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물건들을 수집해왔다”면서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 손때와 정이 흠뻑 묻은 물건을 비롯해 7000여점의 교육 자료를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교육 사료관’ ‘기획 전시관’ ‘농경문화·전통문화 전시관’ 등으로 구성됐다. 놀이문화를 주제로 꾸려진 기획 전시관에선 유독 관람객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딱지 치기, 지우개 따먹기, 종이인형 옷 입히기 같은 옛 추억의 놀이를 설명하느라 어른들의 얼굴이 아이처럼 해맑다.

교육 사료관에는 일제 해방 이후 처음으로 만들어진 교과서, 등사기로 찍어낸 갱지 시험지, ‘불조심’ ‘쥐를 잡자’ 같은 문구가 새겨진 리본 등 당대의 자료가 가득하다. 농경문화·전통문화 전시관에는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가래·풀무·다듬잇돌 등 갖가지 유물을 볼 수 있다.

전시도 그렇지만 이들 부부의 삶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관람객도 많다. 이 관장은 교단에 서기 위해 수십곡의 노래, 100여개의 시를 외운다. 지금도 남을 가르치려면 내가 많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스승 삼아 좋은 얘기가 나오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한 뒤 반복해 듣는다. 이 관장 말마따나 명랑을 타고나기도 했지만, 웃음은 그가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는 방법이다. 이 관장은 “만나는 분들에게 희망을 드리고 싶어 더 많이 웃고 명랑하게 살고 있다”면서 “어둠 속에 있는 나도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세상이 다 보이는 사람들은 웃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고 미소 지었다.

김포=함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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