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무차별 배터리 공세에 韓 텃밭까지 흔들

2025-06-23

# 배터리 장비사인 A사는 최근 중국 부품 업체에서 제안이 쏟아져 놀랐다.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모듈을 공급해 줄 수 있다면서 하루 10통 이상 제안서가 도착해서다.

# 배터리 팩을 제조하는 B사는 중국 배터리 제조사로부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을 파격 할인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궁금해 물어보니 최대 반값에 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국 배터리 산업계의 국내 공세가 거세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선 게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에 중국 배터리 산업 역시 직격탄을 맞으면서 돌파구를 해외서 적극적으로 찾는 모습이다.

한 장비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배터리 굴기'에 나서면서 정부 지원을 토대로 많은 업체가 생겨났는데 정체기에 접어들자 이들도 살아남기 위해 눈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전기차 시장 캐즘이 본격화된 이후 더 심화됐다”고 말했다.

◇ 공급과잉 中 배터리 '해외로 해외로'

중국은 세계 최대 배터리 생산국이다. 풍부한 자원과 대규모 내수 시장, 막대한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글로벌 1위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기업들이 생겨나다보니 배터리 생산능력, 즉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는 데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3년 중국의 배터리 생산량은 1.07테라와트시(TWh)로 전 세계 수요인 0.95TWh를 상회했다. 중형 전기차 156만 대에 해당하는 분량의 배터리가 과잉 공급됐다는 분석이다.

2023년에도 초과 공급 상태였는데 지난해 중국 배터리 생산량은 1.097TWh(중국자동차동력전지산업혁신연맹 통계 기준)로 더 늘었다. 2024년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강타한 해다.

중국 내에는 약 2만5000개의 배터리 관련 기업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제조 업체만 6900여 개에 달한다. 전기차 시장 성장은 주춤하는데 생산량은 늘어나니 출혈경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조건들이 갖춰진 셈이다.

실제 중국에는 전기차 재고가 쌓여 BYD와 체리자동차 등이 파격 할인 판매를 하다 경쟁이 너무 과열돼 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는 일도 최근 벌어졌다. 전기차가 안 팔린다는 건 곧 배터리 수익성 악화로 직결돼, 해외 시장 진출을 더 가속화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 中 공세 대상이 된 한국

중국발 배터리 과잉공급은 국내 산업에 부정적이다.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출혈경쟁까지 감내하며 해외 공략에 나서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먹거리는 그 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EV볼륨스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유럽 전기차에 탑재된 중국산 배터리는 총 22.8기가와트시(GWh)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가 늘어났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기업 배터리 탑재량은 21.6GWh에서 25.8GWh로 약 20% 증가하는데 그쳤다. 심지어 이는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가 강점을 보인 삼원계(NCM) 배터리에서의 결과다. 중국 기업들이 유럽 시장 진출에 사활을 걸면서 국내 업체들이 주도하던 분야에서도 차이가 좁혀진 것이다. 또 4월 한 달만 놓고 보면 CATL은 LG에너지솔루션을 제치고 유럽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중국 배터리 업계의 한국 시장 공략도 거세지고 있다. 중국 최대 배터리 업체인 CATL이 올해 초 한국 법인을 설립한 일이 대표적이다. 항커커지, 우시리드, 헝이능 등 중국 배터리 장비사들도 국내 이차전지 공급망 진입을 본격화했다.

국내 기업들은 배터리 품질을 앞세워 중국과 경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중국 공급망을 배제하고 있는 미국 시장 공략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이호길 기자 eagle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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