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일기] 사라짐

2025-09-04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욱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은 늘 무언가를 얻으면서 동시에 무언가를 잃는 것 같다. 어제의 기억은 오늘의 기억에 덮이고, 오늘의 순간은 내일의 발자국 속에 묻힌다. 누구도 그 과정을 막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다. 흘러가는 삶이 아닌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인 삶일지도 모르겠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눈 깜짝할 사이’라는 말이 점점 더 직설적으로 느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는 자라고, 부모는 늙어가고, 계절은 바뀐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의 번호가 오늘은 더 이상 연결되지 않을 때, 나는 알게 된다. 사라짐은 언제나 예고가 없이 다가온다는 것을.

기억에 흐릿 남아 있는 글 중에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것이 기억난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 매일 체감하는 일상적인 경험 속에 있다.

물론 사라지는 것이 생명만이 아니다. 어떤 날은 열정이 사라지고, 어떤 날은 믿음이 사라지고, 어떤 날은 내 안에 용기가 사라진다. 나는 종종 나에게 지금 사라지고 있는 게 무엇인지 물어본다.

사라짐과 마주하게 될 때, 슬픔이 당연히 따라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져야만 비로소 보이기도 한다. 친구와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부모와 헤어지고 나서야 매일 짜증만 내던 존재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잃어버린 물건 하나가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순간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사라짐은 드러남과 같다. 부재를 통해 존재의 본질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사라짐을 무조건 두려워하기보다, 사라지기 전에 더욱 더 충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종종 나는 두려움이 든다. 내가 이렇게 보내고 있는 일상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나의 기억에서 흐려질 것들과 다른 이의 기억에서 흐려질 것들에 대한 두려움들. 그렇기에 나는 이 순간도 더 깊게 응시하고 간절하게 살아내야 하는 것 같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도,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결국 마음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사라짐은 피할 수 없다. 그 사라짐을 통해 남겨질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완벽하지도, 오래 남지도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매일 조금 더 따뜻한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싶다.

류민수 펜을 든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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