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자연인-오랜만에 느끼는 진짜 독립영화의 ‘괴랄한’ 맛

2025-08-19

제목: THE 자연인(The Nature Man)

제작연도: 2025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24분

장르: 코미디, 미스터리

감독: 노영석

출연: 변재신, 정용훈, 신운섭, 이란희

개봉: 2025년 8월 20일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제작/배급: 스톤워크

한밤중 잠에서 깬 주인공. 방에서 나와보니 주인장 ‘자연인’은 방에 호롱불을 켜고 앉아 뭔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 몰래 엿보니 그가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것은 짜장면이다. 그리고 군만두. 첩첩산중 초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배달음식이다. 가게는커녕 도로도 없어 주인공들도 차를 놔두고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올라간 곳인데? 미스터리다.

영화 이야기는 <요재지이> 같은 괴담집에 실릴 법한 형식이다. 왜 있잖는가. 산길을 헤매던 과객이 어느 집에 묵었는데 밤에 술 가지러 나간 여주인이 안 돌아와 헛간 문틈으로 엿보았더니 여주인이 천장에 커다란 구렁이를 매달아 놓고 날카로운 칼로 배를 갈라 피를 그릇에 받고 있었다, 뭐 그런 스토리. 그런데 그 형식에 내용은 엉뚱한 부조리함을 담았다. 어떻게 이런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지막의 ‘반전’으로 다 풀린다. 믿고 의문은 한쪽으로 밀어놔도 된다. 웃음의 롤러코스터에 그냥 몸을 맡기자.

1인 제작 독립영화

영화가 마무리된 뒤 엔딩크레딧에서 또 한 번 탄복했다. 세상에나. 작정하고 혼자 다 했다. 감독, 제작, 각본,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편집, 음악…. 심지어 예고편 제작까지 다 노영석 감독이 만들었다. 독립영화를 넘어서 아예 1인 제작 영화다. ‘자연인’ 역의 신운섭과 자연인의 후배 ‘란희’ 역의 이란희 배우(독립영화 감독으로 여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여기서는 배우다)는 알음알음 품앗이로 전작부터 감독 영화에 출연해왔다. 시사회 후 참석한 기자간담회에서 들었는데 영화를 찍지 않을 때 감독은 모친이 노원구 상계동에서 운영하는 냉면가게에서 면발을 뽑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여름이 냉면 성수기이므로 당연히 영화는 냉면집이 조금 한가해질 때 즈음인 가을께 찍었다.

중견 유튜버 ‘귀식커’(변재신 분)는 귀신이 출몰하고 귀신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는 믿기 어려운 제보를 한 자연인을 만나러 강원도 산골로 간다. 비록 구독자는 ‘수천 따리’밖에 안 되지만 댄서 유튜버인 친구 병진(정용훈 분)이 동행한다. 등산로 입구에 차를 세우고 산골을 헤매다 길을 잃어 조난했나 싶은 순간, 얼굴에 숯검정을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들이 찾던 자연인이다.

귀신을 소재로 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귀식커 ‘인공’은 초자연현상을 그리 믿지 않은 눈치다. 여차하면 병진과 함께 ‘주작’해 콘텐츠를 만들어낼 계획이었다. 막상 자연인이 사는 곳에 가보니 전화도 없고 전기도 안 들어온다.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산골이다. 당연히 인터넷 따위, 없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의문. 이 자연인은 어떻게 그에게 ‘제보’했을까.

미스터리 형식을 채운 엽기발랄

“아, 뭐 읍내 오일장에 나갔을 때 피시방에서 제보했지.” 호락호락 순진한 사람은 아니다. 의외로 붙임성이 좋은 병진과 달리 귀식커는 이 모든 상황이 의심스럽다. 애당초 그는 왜 문명과 단절하고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자연인일까. 알고 보니 나쁜 짓을 저지르고 도피한 범죄자? 아니면 자신같이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을 첩첩산중으로 유인해 살해하고 털어먹는 연쇄살인마? 이제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들고 온 ‘고프로’만이 그의 방어무기인 셈인데 그조차 먹통이 된다. 도망치려고 하지만 자연인의 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야기의 뼈대는 서정적인 것 같지만 음산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글스의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나 고골 소설 ‘비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내용은 엽기적이며 엉뚱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괴랄한’ 맛이다. 진짜 독립영화판 ‘겉바속촉’이란 이런 거구나. 부디 많은 관객이 들어 차기작 밑천을 마련할 수 있기를.

여러 독립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선보인 건 2023년쯤이다. 배우들이 회상하는 것을 들어보면 영화는 2020년 전후에 찍었다. 한참 코로나19로 일상생활이 어려웠고, 극장가도 힘들 때였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느 날 헬스장 러닝머신을 뛰다 무심코 모니터에 나오던 케이블 방송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저거라면 돈 안 들이고 찍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하게 됐다고 한다.

긴 머리에 소복 차림의 란희가 홀연 등장하자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은 웃었다. 감독의 페르소나 같은 배우가 역시 이번에도 등장해서였을까.

‘긴 머리에 소복’은 한국에서는 1960년대 후반 이후 확정된 처녀 귀신 코드다. 예전에 관련 납량특집 기획 기사에서 언급했지만, <월하의 공동묘지>(권철휘 감독·1967)나 같은 해 제작된 <백발의 처녀>(박윤교 감독) 이전까진 소복과 긴 머리가 딱히 처녀 귀신의 공식 비주얼이 아니었다. 1972년 만들어진 이유섭 감독의 영화 <장화홍련전>의 장화·홍련 자매는 머리를 풀어 헤치고 소복을 입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필름은 사라진 문예봉 주연의 <장화홍련전>(1936)의 남아 있는 스틸 속 ‘여귀’ 사진을 보면 그때만 해도 원작에 묘사된 것처럼 원귀는 녹의홍상(綠衣紅裳), 즉 연두색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자연인을 ‘형’이라고 부르며 ‘민족의 얼’을 역설하는 후배 란희라는 관계 설정을 통해 긴 머리·소복 코드를 1980년대 운동권을 상징하는 생활한복의 알레고리로 확장한다. 독립영화 감독으로 노영석 감독을 알린 장편 데뷔작 <낮술>(2008·사진)에도 이란희 감독 겸 배우는 란희라는 이름으로 나오는데 <낮술>에서 란희는 하이쿠를 읊는 문학소녀, 아니 노처녀였다(감독은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이란희 감독 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덧붙이자면 <낮술>에서 ‘자연인’ 신운섭은 주인공의 몸을 더듬는 변태 트럭기사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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