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EN=김수형 기자] 정작 본인은 15만원짜리 셋방살이를 했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선행을 베풀었던 이상용. 이 시대의 오래 남을 뽀빠이로 우리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국민 MC '뽀빠이' 이상용이 지난 9일 오후 12시 45분, 자택 인근 병원을 다녀오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81세.
1971년 CBS 기독교방송 MC로 데뷔한 그는 1975년 KBS 어린이 노래 프로그램 '모이자 노래하자'를 진행하며 '뽀빠이'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다.특히 1989년부터 MBC 병영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에서 진행자로 활약하며 군장병과 가족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인물.
무엇보다 이상용은 생전 567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의 수술비를 지원하며 선행을 이어왔다. 그는 한 방송에서 "내가 사회를 볼 때 어떤 선생님과 부모님이 왔다. 아이가 입술과 손톱이 파랬다. 수술비가 많아서 못 한다더라. 당시 내가 MC를 했을 때 1만 4천 원 받았는데, 수술비가 1,800만 원이었다. 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정작 본인은 15만원짜리 셋방살이를 했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무려 1천5백만원의 심장 수술비를 지원했던 것.

이어 그는 "세 군데 술집 사회를 봤다. 6개월을 선불로 받았다. 그래서 수술시켰다. 그 아이가 1번이었다. 그 후로 부모님이 사방에 얘기를 하고 다녔다. 뽀빠이 씨가 수술해줬다고. 전국 심장병 환자들이 우리 집으로 왔다. 우리 애도 수술해달라고. '하자!' 그래서 수술한 게 567명을 수술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그는 후원금 횡령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연예계를 떠나야 했다. 이상용은 "50년간 567명 심장병 어린이가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 기금을 유용했다는 오해를 받았다. 3개월 후 무혐의 처리를 받았지만 기사화되지 않았다"라면서 당시 가짜뉴스에 대한 언론 대응도 못하던 시절을 회고, "이 일을 계기로 모든 방송이 다 끊겼다"고 했다. 그는 "무죄 판결이 났는데도 신문에는 안 나더라. 그게 더 서글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일하며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절친 김홍신 작가는 "모함을 받은 게 밝혀진 거다. 그 순간에 저걸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된 거다.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남한테 못할 이야기를 저한테 다 털어놓는다. 많은 사람이 진실 알고 있다. 다 그렇게 지나간 거다"며 그를 회상했다.
이상용은 생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전했다. 그는 "엄마가 58세에 돌아가셨다. '모이자 노래하자' 녹화 도중에 소식 들었다. 그래도 웃고 녹화하고 갔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는 날이었는데 서울에서 대전까지 4시간 걸렸다. 어머니는 벌써 돌아가셨다"며 "어머니한테 전하고 싶은 말은 욕심 안 부리고 키만큼만 욕심 부리고 살겠다. 다른 사람을 욕하지 않고 용서할 거고 좋은 일 하고 싶고. 괜찮은 놈이라는 말 듣도록 살겠다"고 말했다.
억울한 누명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묵묵히 제 길을 걸었던 이상용. 그는, 세상이 잠시 몰라줘도 끝내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낸 진짜 어른, 모두의 뽀빠이였다./[email protected]
김수형([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