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AI 3대 강국' 목표, 전력 대책 없으면 꿈에 불과[최준호의 사이언스&]

2025-06-09

우여곡절 끝에 지난 3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미ㆍ중 기술패권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성장의 한계에 놓인 대한민국이 다시 뛸 수 있을까. 이웃 일본의 언론이 처음 지적했다는 ‘피크 코리아(Peak Korea)' 우려가 한때의 기우(杞憂)로 치부될 수 있을까. 계엄과 탄핵으로 얼룩진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2%(전분기 대비). 3년도 채 못 돼 문을 닫은 지난 윤석열 정부의 처참한 마지막 성적표다. 여소야대 정국 속 계속된 실정, 미ㆍ중 갈등 등 대내외 악조건들이 겹쳐진 탓이다. 역대 어느 정부나 과학기술 공약과 정책은 있었다. 그중엔 산업화와 IT 강국의 기반을 닦은 공약도 있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 시대까지 달려왔다. 대선 후보의 공약은 이제 국정과제로 진화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공약은 화려하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에 그치지 않고 실현될 수 있다면, 세계 기록 수준의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인구 급감이라는 ‘정해진 미래’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터다.

새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방점은 인공지능(AI)에 찍혔다. AI 기술 발전이 '특이점'을 향해 치솟고 있는 마당이니 국가 생존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선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다’는 구호 아래  ‘AI 3대 강국’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렇게 정부 출범 후 가장 먼저 발표된 대통령실 조직에 ‘AI미래기획수석’이 새롭게 등장했다. 그 아래로 ‘국가AI정책’ ‘과학기술연구’ ‘인구정책’ ‘기후환경에너지’ 등 4개 비서관실이 꾸려졌다. 수석이 ‘국가 최고인공지능책임자’(CAIO)가 돼 범국가적 AI 전략을 수립ㆍ추진해 나가겠다는 의도다. 민주당 내에서 ‘AI 차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직제 구조만 보면 지난 정부에서 과학기술 수석 아래 ‘연구개발혁신’ ‘인공지능ㆍ디지털’ ‘첨단바이오’ ‘기후환경’ 4개 비서관실로 운영된 것과 유사하지만, 처음부터 대통령실이 AI를 필두로 한 과학기술 정책의 컨트롤 타워가 되겠다는 게 큰 차별점이다. 지난 20대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공약에 있었던 과학기술 부총리 부활이 이번 21대에선 언급조차 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AI 차르'가 이끄는 새 정부 과학기술

이재명 정부의 AI 공약에는 ^AI 투자 100조원 시대 개막 ^최소 5만개 이상 GPU 확보 ^AI 전용 NPU(신경망 처리 장치) 개발 ^국가 SOC 차원의 AI 데이터센터 구축 ^한국 고유의 '소버린 AI' 개발 ^AI 단과대학 설립 등과 같은 투자ㆍ인프라 구축 등이 들어있다. 이외에도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통해 생성형 AI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AI 기본사회 구축 ^AI 병역특례 추진 ^AI 규제 합리화 등 관련 제도 개편 내용도 들어있다. 학계와 산업계에선 AI 공약이 실현될 경우 ‘단군 이래 최대의 투자와 발전’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역시 관건은 실천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애초 대선 공약에서 ‘세계 최대 AI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조성’을 말했다. ‘광주 AI 데이터센터’ 등과 같은 시설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AI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세계 최대’ 목표를 무색하게 한 것은 물론, 있는 자원마저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활용률도 떨어진다는 질타까지 받았다.

이재명 정부의 AI 정책 자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AI에 대한 전폭적 투자에는 동의하지만, 미국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부족한 인력과 예산을 가진 한국에서 오픈AI처럼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는 방식을 통해 AI 강국을 따라잡기는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다. 대신 정부는 산업ㆍ제조를 위한 응용 AI 육성에 주력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한편으론 중국 딥시크의 사례에서 보듯 오픈소스 공개와 GPU 가격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제는 LLM 개발이 쉬워진 만큼 우리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소버린 AI'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응용 AI를 개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LG와 네이버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들이 이미 자체적으로 LLM을 개발해오고 있는 점도 소버린 AI 구축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혼돈스런 정국 탓에 서둘러 만든 공약이라면 지금이라도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독일의 탈원전 부작용 참고해야

AI 3대 강국과 맞물려 챙겨야 할 게 에너지다. AI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등 서비스 운영에는 막대한 전기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픈AI만 해도 원자력 발전소 5개 규모에 해당하는 5GW급의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상이 필요하다고 미국 정부에 건의한 바 있다.

이재명 정부는 전남 해안 지역에 풍력과 태양광 발전 단지를 대규모 조성하고, 여기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기후 위기가 절박하긴 하지만, 풍력ㆍ태양광과 같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면 전기요금이 현재보다 더 비싸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다.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계통연결, 비상시를 위한 LNG 발전 등 이중ㆍ삼중의 시설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탈원전 끝에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독일이 반면교사다.

기후도 경제도 다 고민이라면 재생에너지만 쓰겠다는 ‘RE 100’보다는 뭐든 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 된다는 ‘CF 100’이 더 현실적이다. 미국은 물론 영국 등 서구국가들도 최근 신규 원전 건설 등 CF 100의 흐름으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3년부터 미국보다 비싸졌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릴 경우 AI대 강국 공약 실현이 어려워질 수 있음도 고려해야 한다. 이제 시작하는 이재명 정부의 5년은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지난 3년처럼 이념과 갈등으로 퇴보할 것인가, 4만 달러를 넘어 5만 달러 시대를 열 것인가. 실용적 시장주의를 선언한 새 정부의 실천을 기다린다.

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CF100(Carbon-Free 100%)

기업이나 국가가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다.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RE100과 유사하지만, CF100에는 원자력 등 무탄소 에너지원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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