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야흐로 ‘러닝’ 붐이다. 러닝 인구가 1000만이라는 예측이 빈번하게 나오고, 아침이든 저녁이든 한적한 공원이든 도심이든 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특히 젊은 층이 주도하는 ‘러닝크루’들은 20~30대 열에 셋은 뛴다고 할 정도로 열풍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행을 민감하게 반응하는 TV 콘텐츠가 ‘러닝’의 붐을 안 받아내는 게 이상하다. 이 러닝에 대해 다각도로 재미를 찾는 프로그램이 늘어났다. 지난달 30일부터 시작된 MBC ‘극한84’는 웹툰작가 출신 방송인 기안84가 ‘크루장’이 돼 전 세계 극한의 마라톤을 섭렵한다.

MBN에서 올해 첫 시즌을 방송하고, 두 번째 시즌을 지난달 24일부터 시작한 ‘뛰어야 산다’는 전형적인 예능의 작법을 취한다. 고정 출연자들 옆에 그때그때 새 얼굴을 끼워 넣고 시즌 1은 ‘초짜들의 풀코스 도전기’를 다룬 이후 시즌 2는 본격적인 ‘크루 대항전’을 펼친다.
이외에도 TV조선이 지난 10월 러닝 버라이어티 ‘런포유’를 론칭했다. 연예인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연예인급 인기를 얻고 있는 인플루언서들의 채널에서 운영하는 러닝 관련 콘텐츠를 포함하면 이 열기는 더욱 크다. 실제 가수 션이나 배우 박보검과 임시완 그리고 고한민, 임세미 이번 ‘극한84’를 통해 새롭게 알려진 권화운 등은 마라톤 선수보다 더욱 빡빡한 러닝 일정을 짜는 ‘RUN(런)예인’들이다.

‘러닝’은 어찌 보면 굉장히 고독한 운동이고, 또 한 편으로는 연대의 운동이다. 코로나19 그 누구도 접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운동을 이어가야 했던 사람들은 서로서로 거리를 두고, 누구도 접근하지 않는 야외에서 홀로 달렸다. 결국 이때 러닝에 눈을 뜬 사람들이 지금 ‘러닝 붐’의 자산이 됐으며 ‘러닝 콘텐츠’의 근간이 됐다.
또 한 편으로 ‘크루’의 문화에서 알 수 있듯, 함께 달려야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함께 달려야 페이스 조절도 쉽고, 낙오도 덜 되기 때문에 기록도 향상할 수 있다. 이러한 러닝의 연대성이 가장 터져오르는 상황이 각종 ‘마라톤 대회’인데.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전국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수는 19개였던 반면, 지난해에는 254개로 급증했다. 올해는 더 많을 공산이 크다.

그렇기에 ‘러닝 예능’ ‘러닝을 통한 콘텐츠’는 러닝이 주는 고독함과 연대감을 다채롭게 다룬다. ‘극한84’가 2회에 걸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빅5 마라톤’을 통해 보였던 것은 신나게 달리며 2등을 한 권화운이 보여준 ‘도파민 레이스’가 아니라, 극악의 오르막을 오르면서 절망을 느꼈던 기안84의 ‘악전고투’였다. 기안84의 모습은 어느 때보다 긴장감에 찼으며, 이는 차라리 예능이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한편으로 ‘뛰어야 산다’ 등에서는 함께 달리는 즐거움을 설파한다. 시즌 1에 나왔던 가수 슬리피와 시즌 2에 등장한 배우 임수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모두 러닝에는 문외한이었고,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것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슬리피는 2개 대회 풀코스를 거푸 완주했고, 임수향은 10㎞ 대회를 준비하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도전을 이어간다.

지금 딱 이 시대의 한국인을 둘러싸고 있는 정서가 고독감과 연대감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 이후 더욱 파편화된 개인. 서로 나누는 인사도 어색해 차라리 SNS(사회관계망서비스)의 DM(다이렉트 메시지)가 편한 사람들. 하지만 서로의 곁이 언제나 필요해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는 한없이 함께 있고픈 열망을 가진 사람들.
이러한 욕망의 발로가 바로 러닝의 붐이자, 러닝 콘텐츠의 붐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달릴 때 느끼는 ‘러너스 하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실로 혼자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과 더불어, 함께 무언가를 해냈다는 소속감으로 오늘도 달리고 있다.

유난히 유행에 민감한 지금의 한국인들, 러닝도 다를 것이 없다. 언젠가 이 열풍은 식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닐 것 같다. 지금의 러닝 열풍, 러닝 콘텐츠 열풍에서 바로 2025년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