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까지도 갑니다"…북한손님만 오는 베이징 상점의 비밀

2025-11-02

우리가 어떻게 한국 사람을 환영할 수 있겠어요?

중국 베이징(北京)시 차오양(朝陽)구 한 상점에 들어가자 여성 업주가 기자를 매섭게 노려보며 중국어로 소리쳤다. 곁에 있던 남성도 기자에게 “별로 우호적인 관계는 아니지 않느냐”면서 밖으로 나가달라고 했다.

업주는 “당신들이 우리 생활과 사업에 영향을 준다”며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더는 질문을 이어가지 못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베이징의 북한 쇼핑거리로 불리는 이곳은 주중국 북한대사관과 마주한 5층짜리 건물로, 1층에 의류·신발·일상용품 등을 판매하는 잡화점 10여 곳이 입점해있다.

북한 승합차에 대형 캐리어 줄 서는 상점

지난달 24일 기자가 찾은 이곳에선 한글로 적힌 붉은 색 간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묘향산’이나 ‘금수산’, ‘보통강’ 등 북한 지명에서 따온 상호가 보였다.

건물 앞 주차장엔 앞번호 133을 단 검은색 승합차가 서 있었다. 북한대사관 전용 번호판이다. 한 여성이 흰색 포장지에 싸인 상자와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를 연이어 차 안에 실었다.

건물 입구엔 대형 여행용 가방을 든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가볍게 들고 들어간 가방은 한껏 묵직한 모습으로 변했다. 한 남성은 고작 두 칸짜리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곁에 있던 동행인의 손을 빌렸다.

팔짱을 끼고 건물로 들어간 남녀는 1시간 가까이 지난 뒤 자신들 몸집보다 큰 비닐봉지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주황색 비닐봉지 양옆에 선 남녀가 환히 웃었다.

검은색 정장을 갖춰 입은 한 남성은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밖으로 나왔다. 수하로 보이는 키 작은 남성이 검은색 가방을 양손으로 끈 채 뒤를 따랐다. 이들 모두 2차선 도로를 건너 북한대사관 동문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주 출입문이다.

좁은 상점 안엔 겨울옷·신발 빼곡

100m 정도 늘어선 이 건물 입구로 들어서자 좁은 복도가 길게 펼쳐졌다. 어깨를 맞부딪히지 않고는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치기 어려운 폭이었다. 복도 옆으로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정면엔 물건을 진열하는 2평 남짓 공간이 마련돼 있고, 그 뒤론 점원이 머물거나 창고로 쓰는 거로 보이는 2~3배 크기의 공간이 숨어있었다.

주 상품은 겨울용 의류와 신발이었다. 점퍼와 코트 등 두꺼운 옷이 최상단에, 그 아래로는 셔츠, 블라우스, 내복 등이 열 맞춰 벽에 걸렸다. 바닥엔 방한 속옷과 신발을 비롯해 전기밥솥 등 가전제품이 담긴 상자도 보였다.

업주에 가격을 문의하자 “한국 사람이냐”는 답이 돌아왔다. 기자가 상점에 들어선 순간부터 경계의 눈빛을 보냈던 터다. 안쪽 공간에 있던 여성은 내부 문을 닫은 뒤였다. 이어 업주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별다를 것 없는 상점”이라고 말한 뒤 눈을 피했다.

매몰찬 반응에 놀라 복도로 나오자 다른 상점 안에서 북한 말투가 들렸다. 한 여성이 이미 구매한 상품을 두고 “오늘 저녁에 가져가겠다”고 말하며 문을 열고 나왔다. 앞에 서 있던 기자를 흘깃 쳐다본 채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비싼 가격에도 북한 사람 몰려”

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곳은 동선과 결제 방식이 제한적인 중국 내 북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곳이다. 온라인 플랫폼이나 다른 지역 상점보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제시해 중국인이나 다른 외국인은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엔 여행사와 택배 회사도 입점했다. 북·중 접경지역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까지 배송이 가능하다고 내세웠다. 실제론 단둥을 거쳐 평양까지 물건을 보내준다는 게 이 소식통의 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9월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이후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고객이 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기찻길·우편로 열려…일반 관광까지 재개될까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곳은 또 있다. 압록강을 끼고 북한 신의주를 마주 본 단둥이다. 기자는 김 위원장 방중 직후 단둥을 찾았다. 대표적 도매 상가인 신류(新柳) 시장에선 북한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었다. 한 상인은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고객이 늘었다”면서 “한 번에 10명씩 찾아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압록강철교(중국 명칭은 중조우의교)에선 아침부터 화물열차와 대형 트럭이 분주히 북한으로 향했다. 단둥역엔 국제여객 열차용 대합실이 새로 마련돼 수년간 끊겼던 일반 관광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완공 후 10년 넘게 개통되지 않은 신압록강대교 주변 북한 측 지역엔 새 건물들이 들어섰다. 중국 측도 종합 점검을 마친 뒤 개통을 준비 중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달엔 북·중 육상 우편 운송로가 공식 재개통했다.

“달라진 북·중 관계…더욱 밀착할 것”

부쩍 늘어난 고위급 교류도 달라진 북·중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김 위원장 방중 한 달 만에 중국 권력서열 2위인 리창(李强) 국무원 총리가 북한을 찾았다.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행사 참석을 위해서다. 10년 전 서열 5위 류윈산(劉雲山)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서기처 서기가 방북했던 것에 비해 확연히 격을 높였다.

앞서 지난 9월 최선희 북한 외무상도 취임 3년여 만에 처음 단독으로 중국을 방문해 리 총리를 예방했다. '북중우호의 해'였던 지난해 이렇다 할 고위급 회동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을 찾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브콜에도 응하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이 가져올 손익 계산 때문이겠지만 11년 만의 방한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전 세계 이목이 시 주석에 쏠렸다는 점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북·중은 더욱 가까워지며 미국을 견제할 것”이라면서 “양국의 외교적 지지와 경제 교역 및 사회문화 교류 확대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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