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AI 인프라·공공서비스…가장 소중한 ‘K자산’은 인재다

2025-11-17

이미 한국의 재래식 잠수함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이번엔 핵추진 체계까지 확보 ‘궁극의 방패’로

젠슨 황이 GPU 26만장을 공급하기로 한 배경은

‘소프트웨어·제조·AI’ 등 3대 핵심 기술 확보한‘보기 드문 나라’기 때문

트럼프 ‘신라 왕관 선물’로 한국인의 탁월한 ‘공감능력’까지 보여줘…

우리가 가진 무기들, 그중 제일은 ‘사람’이다

잠수함은 대표적인 비대칭 전력 자산이라고 한다. 바닷속은 현재 인간이 가진 기술로는 쉽게 탐지하기 어려운 공간이다. 이 때문에 잠수함은 바다 위를 다니는 보통의 함정들에 비해 비대칭적인 작전수행능력을 갖는다.

한국은 잠수함의 이런 능력을 잘 보여준 나라이기도 하다. 다국적환태평양훈련인 림팩(RIMPAC)에서 한국 잠수함들은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2004년 림팩에 참가한 장보고함은 10만t급 핵추진 항공모함, 이지스 구축함, 순양함 등을 포함해 30여척을 격침해 훈련 상대편의 함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한반도 주변에 있는 일본과 중국, 러시아의 해군력은 우리보다 막강하다. 인구나 경제력 등을 고려했을 때 이들 해군의 수상함과 대칭적으로 숫자 경쟁을 벌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림팩 훈련의 교훈을 되짚어보면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잠수함이 가장 가성비 높은 선택일 수 있다. 다행히 우리는 재래식 잠수함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고 있다.

재래식 잠수함은 디젤엔진과 2차전지의 조합으로 동력을 얻는 잠수함이다. 디젤엔진을 돌려(이때 공기가 필요하다) 전지를 충전하고 그 전기로 모터를 돌려 추진력을 얻는다. 여기에 연료전지 같은 공기불필요추진시스템(AIP)을 탑재해 공기가 반드시 필요한 디젤엔진의 단점을 보완한다. 우리 해군이 가장 최근에 진수한 장영실함은 리튬이온 전지와 AIP의 조합으로 잠항시간을 3주 정도로 획기적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3주 정도의 잠항시간이 절대적으로 길다고 하기 어렵다. 속도를 높이면 배터리가 금방 방전된다. 그나마도 수상함처럼 빠른 속도로 운행할 수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력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핵추진 잠수함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핵추진 잠수함의 주동력원은 우라늄이 핵분열할 때 나오는 에너지이다.

기본원리는 핵발전소와 같다. 핵분열에서 나오는 막대한 에너지로 물을 데워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직접 추진력을 얻거나 전기를 만든다. 중성자에 의한 연쇄핵분열이 에너지의 근원이므로 이 과정에서 공기는 전혀 필요가 없다. 한번 핵연료를 장전하면 최소 수년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아도 된다. 잠수함의 비대칭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셈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왜 그토록 핵추진 잠수함을 필요로 하는지 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상대국의 핵추진 잠수함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데에도 핵추진 잠수함이 꼭 필요하다. 또한 잠항 기간이 사실상 무제한이기 때문에 원양 작전에서도 유리하다. 해상무역로에 국가 경제가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이 또한 사활적인 문제이다. 이처럼 핵분열 에너지로 추진력을 얻고 상대 함정을 견제·공격하는 핵추진 잠수함을 공격핵잠수함(공격핵잠)이라 한다.

핵추진으로 극대화된 은밀성에 대량살상무기가 탑재되면 국가의 운명을 짊어지는 전략무기로 탈바꿈하게 된다. 잠수함에 핵탄두가 실린 탄도미사일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전략핵잠)이 바로 그것이다. 전략핵잠은 거의 모두 핵분열 에너지로 추진된다.

국방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핵추진 잠수함, 즉 핵잠이라는 용어보다 원자력추진 잠수함, 즉 원잠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말만 다를 뿐이지 본질은 똑같다. 우라늄 원자핵이 연쇄핵분열을 할 때 방출되는 에너지로 물을 데워 그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방식이다. 그러니까 에너지의 근원은 원자 속의 원자핵이 분열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원자력 에너지라고 하든 핵 에너지라고 하든 다 같은 말이다. 발전소에서는 원자력 발전소/핵 발전소라는 말을 병행해 쓴다. 다만 에너지의 근원에 좀 더 가까운 말은 핵 에너지라고 할 수 있다. 영어에서도 공격형 원잠/핵잠은 Ship Submersible Nuclear(SSN)로 구분한다. 얄궂게도 우리 언어 습관에서는 ‘원자력’은 보다 긍정적이고 ‘핵’은 보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더 많이 담고 있다. 예컨대 ‘원자력 무기’보다는 ‘핵무기’가 더 입에 잘 붙는다. 그래서 보통 원잠은 핵무기를 싣지 않은 원자력추진 잠수함, 핵잠은 핵무기를 실은 핵추진 잠수함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국방부에서는 이런 우려를 의식해 지금 우리가 추진하는 잠수함이 핵무기를 실은 핵잠이 아니라 핵무기가 없는 원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이후 다시 핵잠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핵무기를 실은 전략핵잠의 임무는 공격핵잠과 달리 자국이 적국으로부터 선제 핵공격을 받았을 때 그로부터 살아남아 적국에 2차 보복공격을 가하는 것이다. 전략핵잠은 지상의 탄도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보다 훨씬 더 은밀하기 때문에 적국이 선제 핵공격으로 아군의 핵전력을 모두 없애려고 하더라도 그로부터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적국은 아군 전략핵잠의 2차 보복공격 때문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이 결과를 알고 있다면 적국은 우리에게 선제 핵공격을 할 수 없다. 이른바 상호확증파괴에 의한 공포의 균형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전략핵잠은 그 존재 자체가 자국을 지키는 궁극의 방패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은 이미 재래식 잠수함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관을 보유하고 있다. 핵잠을 만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직발사관을 설치할 수 있겠지만 거기 들어가는 탄도미사일에 핵탄두는 없다. 아직 우리는 핵무기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현무계열 미사일이 아무리 뛰어나도 도시 하나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핵탄두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다만 재래식 미사일이나마 은밀하게 발사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새로 생긴다면 적국의 주요 시설 등에 예기치 못한 타격을 입힐 수는 있을 것이다.

예전의 칼럼에서도 썼듯이 우리는 핵추진 잠수함을 도입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핵비확산 체제를 철저하게 준수해야 하며 국제사회로부터 그 신뢰를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핵추진 잠수함 도입이 성공할 수 있다. 다만 비확산 체제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번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나는 핵추진 잠수함 이외의 또 다른 두 가지 ‘비대칭 전력’의 위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하나는 엔비디아가 GPU 26만장을 한국에 공급하기로 한 것과 관련이 있다.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첨단의 GPU를 한국에 우선 공급하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의 배경으로 젠슨 황 CEO는 한국이 소프트웨어, 제조, AI 등 3가지 핵심 기술을 모두 갖춘 드문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한국은 GPU 5만장을 정부에 투자한 최초의 국가라는 점도 덧붙였다.

이런 태도는 젠슨 황만의 유별난 한국 사랑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지난 9월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AI 산업 투자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래리 핑크 회장은 한국이 아시아의 AI 수도가 되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10월에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가 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와 협약을 맺고 대규모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함께 협력하기로 했다. 가히 AI 혁명기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지금 이 시기에 한국을 향한 일련의 흐름이 이어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AI 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AI의 발전 전망에서 피지컬 AI가 중요하리라는 점은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AI가 물리적 실체와 결합해 실제 물리적인 현실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는 단계를 뜻한다. 여기서 한국이 비대칭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분야가 제조업이다. 한국은 자동차, 조선, 반도체, 배터리, 철강 등에 이어 이제는 화장품과 첨단무기도 잘 만드는 나라이다. AI가 물리적 실체를 입고 현실세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하려면 한국만큼 좋은 나라를 찾기 어렵다. 한국의 포털 업체가 구글을 넘어서거나 우리의 독자적인 AI 파운데이션 모형이 글로벌 빅테크들을 능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물론 그럼에도 너무 뒤처지지 않게 노력은 기울여야 한다). 제조업은 다르다.

AI가 제조업을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는 한국이 굉장히 많이 확보하고 있다. 이 기회를 잘 살리면 우리가 AI 산업혁명의 새로운 표준을 만들 수도 있다. 한국은 디지털행정에서도 앞서 있기에 공공서비스 분야 또한 AI 혁명에 동참할 우리의 비대칭 전력이라 할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선물한 신라 금관과 연결된다. 드라마와 영화, 노래 등 콘텐츠를 잘 만드는 나라라서 그런지 역시 한국은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고 움직이는 능력이 참 뛰어난 것 같다. 이른바 ‘소프트파워’이다. 후대 역사는 “금관 모형으로 핵잠을 얻었다”고 기록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천년 전 조상님들의 뛰어난 솜씨 덕분에 지금 후손들이 큰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일각에서는 이번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두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날강도에게 두 눈 뜨고 국부를 뺏긴 것과 같다고 격분하지만(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국가 간의 현실적인 역관계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미국처럼 동맹국까지 압박하거나 중국처럼 역공을 날릴 정도로 경제력이나 군사력, 외교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나라의 힘을 좀 길러야 되겠다”고 했겠나. 이 와중에 우리의 소프트파워는 하드파워를 메워주는 강력한 비대칭 전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한국 콘텐츠 경쟁력의 원동력이 섬세한 감정 빌드업의 높은 완성도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도 여러모로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이 또한 척박하고 좁은 국토에 자원도 없고 인구도 애매한 우리가 수많은 외침과 내전을 겪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버티며 살아남으려고 했던, 피눈물 나는 분투의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그 모든 비대칭 전력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 사람이지 않을까? 결국 우리가 믿을 건 인재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미국의 압박도 중국의 위협도 아니다. 의대와 부동산에 미친 우리의 자화상이 우리 자신을 파멸시킬 가장 강력한 ‘역비대칭 전력’이다.

■이종필 교수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했으며 2001년 입자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연세대·고등과학원 등에서 연구원으로, 고려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부터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신의 입자를 찾아서>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 등이 있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등을 우리글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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