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 한장에 수십억 날아간다"…1470원 찍은 환율, 기업 비명

2025-11-12

국내 한 제과업체 재무팀 A(50) 부장은 요즘 내년 사업계획서를 짜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1400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환율(달러당 원화값) 때문이다. 이 회사는 밀가루부터 옥수수, 콩, 설탕 같은 원재료 50% 안팎을 수입에 의존한다. 환율 전망이 크게 어긋나면, 사업 계획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A 부장은 “환율이 10원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수십억 원 출렁한다”며 “일단 환율 시나리오 3개에 바탕을 둔 사업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12일 낮 12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찍었다. 지난 4월 10일 이후 약 7개월 만에 달러당 원화 가치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환율은 상승). 지난달 1400원을 넘긴 ‘고환율’ 추세가 그칠 줄을 모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외환시장이 불확실성에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 변동성이 확대할 경우 당국이 개입할 수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11월이면 이미 내년 사업 계획 작성에 한창인 기업에 고환율 불똥이 떨어졌다. 수출 기업은 물론, 원자재를 수입하는 기업도 사업 계획을 짤 때마다 중요 변수로 넣는 게 환율이어서다. 부산의 한 선박 부품업체 B사 대표는 “중국에서 달러로 사서 들여오는 철강 원자잿값이 폭등해 환율을 확인하기가 두렵다”며 “요즘처럼 환율 변동 폭이 크면 환차손만 수억 원에 이르는데 내년 사업 계획을 짜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털어놨다.

기업 불안을 부추기는 건 딱 1년 전 2025년 사업 계획을 짰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해 1월 50대 기업이 지난해 연말 사업 계획을 수립할 때 환율 전망을 분석한 결과 달러당 1350∼1400원(33.3%)이 가장 많았다. 달러당 1300∼1350원(29.6%)이 뒤를 이었다. 현재 수준인 달러당 1450∼1500원을 전망한 기업은 11.1%에 그쳤다.

올해 1월부터 이날 현재까지 원-달러 환율 평균은 1414원이다. 기업 4곳 중 3곳의 올해 환율 전망이 빗나갔다는 의미다. 전자업체 C사 부사장은 “올해 전망대로 1300원대 환율로 흐른 기간이 3개월(5~7월)에 그쳤다”며 “올해 내내 환율 때문에 애를 먹었는데 내년도 전망이 크게 벗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환율이 1200원, 1300원, 1400원일 때 의미가 다르다. 수출입 품목별로 차이는 있지만, 보통 환율 1200원을 기준으로 원재료를 수입할 때 고환율의 부정적 효과가 커진다. 환율이 1300원에 이르면 원화가치 하락 속도가 가팔라진다. 환율이 1400원대면 환율만 놓고 봤을 때 위기로 볼 수 있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강(强)달러 바람이 거센데다 한·미 기준금리 차(상단 기준 1.5%포인트)가 여전해 고환율 추세를 뒤집을 반전 요소가 마땅치 않다”고 분석했다.

올해 원-달러 환율의 최고점-최저점 차는 136원에 달했다. 널뛰는 환율 자체가 대외 불확실성의 한 축이었다. 자칫 현재 1400원대 환율을 내년 기준으로 삼았다가 환율이 내려가면 목표대로 수출하고도 환차손을 입을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을 낮춰 잡았다가 더 오르면 높은 원자재 대금을 지불해야 하는 식이다.

산업별로 고환율에 따른 희비도 엇갈린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 수출기업의 영업이익은 평균 0.5~1% 늘어난다. 하지만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은 1~1.5% 줄어든다. 고환율 낙수(落水)효과가 예전만 못한 측면도 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환율이 오르면 수출 주도형 한국 경제에 유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엔 해외 생산 비중이 증가하고 환 헤지(환 변동 위험 회피) 달러화 결제가 늘어나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일반적으로 달러 매출 비중이 높은 조선·해운·자동차는 고환율에 따른 수익 개선을 기대한다. 반면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철강은 원가 부담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가전은 해외 매출, 현지 생산 비중도 높지만, 부품 수입 부담도 덩달아 커져 득실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환율은 약한 고리부터 노린다. 삼성전자·현대차 같은 대기업은 이미 해외 생산기지가 많고 고환율 대응 능력도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약 90%가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대기업이나 해외로 판매하는 구조다. 고환율로 중간재 수입 비용이 올라도 대기업 납품가나 수출품 가격에 100% 반영하기 어렵다. 산업연구원은 환율이 10% 오를 경우 대기업은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하락하지만, 중소기업은 환율이 1%만 올라도 영업이익률이 0.36%포인트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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