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 위의 미래형 신도시로 기대를 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시티’가 표류하고 있다. 유가 하락과 사우디의 재정난, 중동 리스크가 더해지며 미래가 불투명한 도시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22일 파이낸셜타임스(FT)·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네옴시티를 건설을 총괄하는 법인 네옴은 아이만 알-무다이퍼를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그는 프로젝트의 범위와 우선순위에 대한 포괄적인 검토에 나섰고, 네옴은 공식적으로 "새로운 단계의 진행에 접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네옴 관계자는 FT에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재검토가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네옴시티는 서울 면적의 44배(약 2만6500㎢)에 달하는 사우디의 국가전략사업이다. 지난 3월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부 보고서를 인용해 당초 5000억 달러(710조원)로 예상한 사업 규모가 2080년 최종 완성 때까지 8조8000억 달러(약 1경원)에 달할 것이라 전했다. 하지만 천문학적 비용에 반복적으로 사업 지연과 축소 위기를 겪고 있다. 네옴은 2030년까지 150만명 거주에서 30만명 미만으로 목표를 낮췄고, 초대형 직선 도시 '더 라인'은 170㎞ 중 2.4㎞만 우선 완공하기로 했다.

초기 투자비용을 부담할 사우디의 재정 상황이 악화한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사우디 재무부는 올해 1분기 국가 순부채가 약 300억 달러(약 43조원) 증가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1분기 기준 사상 최대 폭이다. 사우디의 총부채는 3540억 달러(약 507조원)으로 사우디 국내총생산(GDP)의 30%에 달한다. 정부 ‘금고’ 역할을 하는 국영기업 아람코의 1분기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4.6% 줄었고, 배당금도 30% 축소됐다. 여기에 당초 계획했던 민간 투자 유치는 부진하다. 최근 중동에 지정학적 긴장감이 높아진 영향이다.
사우디의 돈줄인 유가 하락도 한몫했다. 올해 초만 해도 배럴당 75~80달러 수준을 오가던 국제 원유가격은 현재 20%가량 내렸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유가가 배럴당 62달러까지 하락한다면 사우디의 재정 적자가 두 배로 늘어날 거라 경고했다.
한국 기업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ㆍ현대건설 컨소시엄이 2022년 수주한 ‘러닝 터널’ 공사가 발주처 요청으로 지연되고 있다. ‘더 라인’ 지하에 고속ㆍ화물 철도를 놓기 위해 터널을 뚫는 프로젝트로, 삼성물산 컨소시엄이 28㎞ 구간을 맡았다. 공사비 10억 달러(약 1조38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사업이지만, 지난해 말 기준 공정률 30%에서 멈춘 상태다.

성신양회는 이 공사에 레미콘을 납품하기 위해 2023년 현지 법인을 세우고 공장을 가동해왔으나, 올해 초 가동을 중단했다. 일부 인력도 현지에서 철수했다. 성신양회 관계자는 “공장 재개 일정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남은 인력이 사우디 내 다른 사업 수주를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사우디가 동계 아시안게임(2029년)ㆍ엑스포(2030년)ㆍ월드컵(2034년) 개최 등 다른 국가 행사에 자금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 그쪽에 우선순위를 둔 것 같다"며 "네옴시티가 후순위로 밀린 것 같다"고 말했다.
유태양 크레센트컨설팅 파트너는 “네옴시티는 2023년부터 사실상 관광성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며 "중동 사업은 언제든 축소ㆍ취소될 수 있는 만성적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은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