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결국 우리 것 쓸 것"…中반도체 자립 HBM·EUV만 남았다

2025-09-08

독일 장비업체 수스(SUSS)가 HBM 제조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자 행사장을 채운 300여 관중 다수는 30분 강연 전체를 녹화했다. 같은 시각 옆 강당에서 진행된 원자층증착(ALD) 장비 발표에도 HBM과 3D(차원) D램은 강조됐다. 강당 밖 기업 전시관에는 HBM용 TC-본더, TSV 장비가 곳곳에 배치돼 있었다.

여느 반도체 행사의 익숙한 풍경이다. 단, 언어가 중국어라는 것만 빼면. 이곳은 중국 장쑤성 우시에서 열린 반도체 장비 전시회다. 주제는 ‘강한 중국, 세계를 품자’.

지난 4~6일 중국 우시에서 열린 제 13회 반도체설비연례회의(CSEAC 2025)는 중국 반도체가 ‘자립’을 뽐내는 무대였다. 극자외선 노광장비(EUV)와 최신 HBM을 제외한 대부분 최첨단 기술에서 중국 업체들은 국산화에 성공했다. 행사를 주최한 중국전자전용설비공업협회에 따르면, 나우라·AMEC·ACM리서치 등 중국 대표 장비기업을 포함해 22개국 1130개 업체가 참가했다. 1년새 참가 기업이 40% 늘었다.

‘장비도 100% 자립하자’

4일 개막식에서 나우라의 자오진룽 회장은 “중국 대형 장비업체 12곳은 2021~2024년 연평균 45%씩 성장했고, 인공지능(AI)은 더 강력한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피오텍의 광콴 대표는 “지난 10년간 기술을 닦아 ALD 장비 국산화를 이뤄냈다”고 했다.

중국은 지난 2019년 국가집적회로 투자펀드 2기를 조성하며, 장비·소재·소프트웨어 국산화를 집중 지원하기 시작했다. 중국 장비 업체들은 ‘국산 장비·부품 채택 지원금’ 정책에 힘입어, SMIC·화홍·창신메모리(CXMT)·양쯔메모리(YMTC) 등에 장비를 납품하며 성장했다.

올해 전시회에서 나우라는 12인치 이온주입기와 3D 첨단 패키징 장비를 선보였고, 최근 지분을 인수한 킹세미와 함께 부스를 차려 ‘없는 게 없는’ 다양한 제품군을 뽐냈다. ‘중국의 램리서치’로 불리는 AMEC은 플라즈마 에칭 장비와 ALD 증착 장비 등 신제품 6종을, 피오텍은 ALD 증착 장비와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를, ACM리서치는 세척 장비를 공개했다. 화웨이 자회사인 사이캐리어는 신제품 전시 없이 전 제품군을 소개했다.

‘HBM 새 먹거리’ 기정 사실화

전시회 중 열린 대부분 세미나에서 HBM을 언급하는 등 HBM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한국 HBM 장비 업체인 넥스틴도 우시 정부의 요청으로 부스를 열었다. 넥스틴은 오는 10월 중국 우시에 HBM 장비 조립 시설을 완공한다. 넥스틴 관계자는 “R&D는 한국에서만 하되, 고객사의 ‘중국산’ 수요를 맞추기 위해 일부 제품의 최종 조립을 우시에서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반도체 증착 장비 부품 기업 RFPT는 이번 전시회에 처음 참가했다. 이동헌 대표는 “중국 부품이 기술은 비슷하게 따라왔지만, 신뢰성과 제조 품질에선 한국 제품이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소부장 기업은 중국 사업을 키울 기회와 함께 중국 장비업체와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숙제도 안았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난징무역관 박지수 부관장은 “최근 중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입 통관과 대금 결제가 까다로워져서, 중국에 직접 법인을 세우는 한국 중소업체들이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 병목’ EUV, 러시아 부품에 머신러닝 도입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는 노광 장비만큼은, 중국도 기술 부족을 스스로 인정한다. 다만 중국은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전시회에서 만난 러시아 젤레노그라드 나노기술센터(ZNTC)의 아나톨리 코발레프 CEO는 중앙일보에 “중국 SMEE에 노광장비 부품을 납품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ZNTC는 자체적으로 구형 노광 장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 바 있고, 지난 3월에는 이란과 장비생산 협약도 맺었다. 중국 국영기업 SMEE가 자체 EUV 개발에 성공해 이를 중국 SMIC에 납품한다면, 현재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2·3위인 삼성전자와 SMIC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다.

전시회에서 리우 양 하얼빈공대 컴퓨터과학 교수는 머신러닝 기법으로 리소그래피 장비를 정밀 제어하는 연구 현황을 발표했다. 화웨이와 하얼빈공대는 컨소시엄을 맺고 EUV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양 교수는 “수년간 노력 끝에 일부 제품을 출시했지만, 어떻게 부품을 통합해 성능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가 향후 문제라고 말했다. 중국은 외국 장비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는 식으로 장비 자체의 제조는 익혔으나, 첨단 장비일수록 제어 기술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발표 말미에 말했다. “나는 논문 여러 편 쓰는 데 관심 없다. 우리는 이 장비의 국가적 생산 계획을 갖고 있다. (칩·장비의) 내부 설계는 미국이 했지만, 결국 우린 우리의 소프트웨어로 이걸 활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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