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간경향] “닥수(닥치고 수학) 아닙니다. ‘영어는 중학교 때까지만 빡세게 하고, 고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학원은 두 시간만 하면 된다’고들 하는데, 점수 보세요. 1등급 3%입니다, 3%. 점수가 미쳤어요.”
지난 12월 9일 저녁 대전 둔산동에서 예비 고1 겨울특강 설명회에 나선 한 영어 강사가 스크린에 띄워진 ‘2026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등급표’를 가리키며 열변을 토했다. 그는 “예전처럼 수능 최저에 영어는 당연히 활용할 수 있다고 믿는 때는 지났다. 영어 1등급이 1만5000명인데 2등급 받아서는 스카이(SKY)는 정말 쉽지 않다”며 “이젠 고등학교 영어 시험도 수능식으로 바뀌고 있어서 아이들이 지금 학습량으로는 감당하기 벅차다”고 강조했다.
이날 설명회 뒤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특강 사전접수가 시작됐는데, 학원 측은 수학, 국어, 영어 순으로 충원되던 이전과 달리 국어와 영어, 수학의 접수율이 거의 비슷하다고 귀띔했다.
2026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둘러싼 불수능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특히 대입 수시 전형에서 최저학력기준을 책임져주던 영어가 역대급으로 어렵게 출제되면서 사교육 완화라는 절대평가 전환 취지를 정면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수경 학생은 이번 수능 영어에서 3등급을 받고 재수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는 “3년 동안 모의평가에서 3등급을 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사설(모의고사)에서도 1등급은 안 나와도 2등급은 안전하게 받았다”면서 “영어가 어렵다고 생각은 했는데, 가채점하면서 올해 대학에 못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교만 해도 3합5(세 과목 수능 등급 합이 5 이내) 하던 친구가 3합7도 간당간당해서 ‘최저떨’(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지 못해 수시전형에서 불합격하는 것)한다는 친구도 많다”면서 “몇몇은 정시로라도 원서를 쓴다는데 그러면 대학을 몇 단계나 낮춰야 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11월 13일 실시된 수능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은 3.11%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수능에서 영어는 절대평가로 90점 이상을 받으면 1등급이 되는데, 90점을 넘긴 응시생이 100명 중 3명에 그친 것이다. 이는 상대평가로 등급을 가르는 국어와 수학 등 다른 수능 과목 1등급 비율인 4%보다 낮은 수준이다. 1등급과 2등급을 합친 비율도 17.46%로 역대 가장 적다.

수능 영어 절대평가는 2014년부터 추진돼 ‘대학입시제도 3년 예고제’에 맞춰 2018학년도 수능부터 도입됐다. 2014년 8월 황우여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영어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고교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영어과정 정상화를 위해서는 절대평가 전환이 필요하다”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한마디로 수능 영어를 쉽게 내서 사교육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어 절대평가는 당시 사회문제로 부각됐던 조기 유학이나 영어유치원 등 영어 사교육 광풍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2018학년도 첫 번째 절대평가 수능에서 10.03%를 기록한 이후 매해 널뛰기를 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고 있다. 이후 2년 연속 10%를 밑돌았던 1등급 비율은 2021학년도 수능에는 12.66%로 치솟아 ‘물영어’라는 비난을 받았고, 이후부터는 들쭉날쭉하지만, 우하향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고등 영어 입시 강사 A씨는 “2021년이 쇼크였다. 학생들도 쉽게 최저를 챙길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변별력 우려가 커졌고, 대학도 영어가 변별력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자체적으로 (정시에서) 영어 반영 비율을 줄였다”면서 “학습량이 줄면서 실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도 사실이고, 평가원이 그 부분을 캐치 못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현재 고3 학생들의 실력에 비해 수능 영어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수능과 고등학교 영어Ⅱ 교과서 4종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난해 수능 영어 지문 최고 난이도는 ATOS 지수(영어지문 독해측정지수) 기준 13.84학년으로 교과서 4종의 최고 난이도보다 최대 5학년 이상 높았다. 평균 난이도도 2025학년도 수능이 9.81학년으로 4종 평균인 8.21학년보다 2학년 이상 높았다.
더 큰 문제는 매년 종잡을 수 없는 난이도 변화다.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요구하는 대학에 응시하는 수험생은 그해 모의평가를 기준으로 수능 영어에서 몇 등급을 맞을지 예상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당장 지난 6월 모의평가에서 영어 1등급 비율은 19%에 달했다. 6월 모평은 평가원이 직접 출제하는 시험으로, 수험생·학부모 사이에서 ‘뒤통수가 얼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절대평가 취지와 달리 영어가 대단히 어렵게 출제되면서 올해 입시의 중대변수가 됐다”며 “특히 국어, 수학, 탐구는 잘 보고 영어를 못 쳐서 최저를 못 맞추는 수험생이 많아 수시는 물론 정시 지원전략도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입시 현장의 혼란은 자연스럽게 학생·학부모들의 불안으로 전이되고 있다. 서울에서 초등학생과 중학생 두 자녀를 둔 B씨는 “큰아이가 다니는 학원은 수학 선생님이 워낙 잘 가르쳐 선택했는데, 고등 영어반이 약해 걱정하게 됐다”면서 “영어 학원만 따로 찾아 보내야 하나 싶어서 요즘 맘카페를 계속 뒤진다”고 말했다.
절대평가의 장점은 사라지고 불안감에 사교육을 찾을 이유만 커지면서 절대평가 자체에 대한 회의론도 등장했다. 한국영어영문학회 등 36개 학회가 모인 한국영어관련학술단체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영어 절대평가는 처음부터 잘못 설계된 제도로, 구조적 오류가 한계에 다다르며 현장에서 폭발하고 있다”며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교육 당국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은 사실이지만, 영어 평가 방식을 전환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최교진 교육부 장관)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 장관은 앞서 지난 10월 국회 답변에서는 고교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를 장기적 과제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도교육감들과 교육 수장이 절대평가 확대를 위한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고교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는 앞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서어서문학)는 “고등교육 정상화를 위해 수능과 내신의 절대평가는 장기적 과제로 충분한 준비와 함께 추진해야 할 목표”라며 “절대평가가 논란이라지만 핵심은 학생부로 선발해야 할 수시 전형에 수능성적이 개입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는 “영어 절대평가 논란의 가장 빠르고 근본적인 해결은 수시 전형에서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없애는 것으로, 서울대는 2028년부터 수능 최저를 폐지한다”며 “대신 지역 간 내신 편차를 보정하기 위해 출신교 블라인드를 없애고, 학생부 반영 비중을 높이는 등의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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