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도 폭력이다···종잡을 수 없고, 잔인하지만 반드시 찾아오는

2025-07-14

약한 사람만 골라 죽이고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게다가 서서히 그 대상을 늘리고 있다면요.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레베카 솔닛은 책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기후위기는 폭력”이라고 말합니다. 기후 변화와 폭력의 증가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데 주목한 건데요. 최근 기록적인 폭염을 보면 기후위기는 폭력을 부추기는 수준이 아니라 폭력 그 자체가 된 것 같습니다.

7월 중 사상 처음으로 기온이 40도를 넘긴 지난 8일 전후로 농부·택배기사·건설노동자가 잇달아 숨졌습니다. 가축 60만 마리가 폐사하고 농산물 작황도 부진해졌습니다. 늘어난 전력 소비는 화석연료 사용량 증가로 이어져 다시 온난화에 기여하는 악순환을 만들어냅니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고선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 점선면은 이번 폭염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폭염은 지구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구온난화로 해수온이 오르면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기단이 강해지는데요. 올해는 북태평양 온도가 평년 대비 5도 이상 높게 나타나면서 고기압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커졌고, 장마전선을 밀어냈습니다. 여기에 대기 상층에 티베트 고기압까지 겹치면서 마치 두 겹의 이불이 덮은 것처럼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된 겁니다. 김해동 계명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본격적인 여름 날씨는 초복(7월20일)과 말복(8월9일) 사이에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어요.

이상기후는 무방비 상태인 자연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난 8일 경북 동해안에서는 무게 100㎏이 넘는 아열대 어종인 대형 참치 1300여 마리가 무더기로 잡혔습니다. 어민들은 기후변화로 유입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덥다고 이동할 수 없는 가축들은 단체로 폐사했습니다. 5월20일부터 지난 10일까지 폐사한 가축만 총 60만4636마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약 11배 규모입니다. 농산물 작황도 역대급으로 부진한데요. 더위에 수박 안이 다 녹아 ‘피수박’이 생길 정도입니다.

갑작스러운 폭염에 개별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기후위기에 취약합니다. 기후위기 최전선에 있는 농촌이 대표적이에요. 지난 9일 오후 1시47분쯤 전남 곡성군 한 농경지에서 A씨(80대)는 폭염 속 농사일을 하다 숨졌습니다. 건설노동자나 환경미화원 등 야외 노동자들도 폭염에 취약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7일에는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단축근무 적용 없이 일하던 B씨(23)가 경북 구미시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물류 노동자들은 농작물 등 상품 물량이 줄면 수입에 타격을 받습니다. 하역 노동자들은 박스 한 개당 무게에 따라 80~1000원의 하역비를 받는데요. 일감이 줄었더라도 생계를 위해서는 선풍기 하나 없는 일터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택배 노동자 중에서는 벌써 3명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배달 노동자들은 폭염기 배달 건수는 늘지만 특수고용노동자라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폭염으로 인해 줄어든 수급은 고물가로도 이어집니다. 소위 ‘히트 플레이션’(폭염+인플레이션)인데요.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기온 1도 상승이 1년간 지속되면 농산물 가격은 2%, 전체 소비자물가 수준은 0.7%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해 여름 기록적 폭염으로 벌어진 ‘생크림 대란’은 동네 빵집이나 카페 등 소규모 개인 자영업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폭염은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도 문제입니다. 더위가 지속되면 냉방기 가동이 늘고 전력수요도 급증하는데요. 이미 지난 8일 최대 전력 수요가 95.7GW(기가와트)로 전력 통계 집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입니다. 발전량이 늘수록 화석연료 소비는 늘고 온난화는 더 빨라집니다. 한국의 전력생산은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국제 에너지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지난 4월 한국 전력 생산량 가운데 화석연료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에서 49.5%를 차지합니다.

화석연료 소비 증가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이어지는데요. 이산화탄소는 전체 온실효과의 65%를 차지하는 대표적 온실가스입니다. 화석연료로 인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온난화로 빙하와 눈이 녹고 해수온이 오르면 폭염 같은 이상기후의 빈도는 더 잦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건 개별 국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54도 더 높았습니다. ‘기후위기 부정론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은 지구 온난화 대응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점에서 오는 11월 브라질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는 미국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협력이 숨을 고르는 동안 폭염에 대한 대응은 각국 정부의 몫일 텐데요. 우선 생명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약계층들이 폭염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도록 가능한 대책들을 신속하게 집행해야 된다”고 지시했습니다. 지난 11일부터는 ‘폭염 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 규정이 의무화됐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화석연료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확대가 꼽힙니다. 태양광 발전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총 태양광 발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20분까지 총수요의 20%를 감당했습니다. 다만 환경 조건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달라지는 점은 신재생에너지의 한계입니다. 이 대통령이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늘리되 원자력발전 에너지도 포기하지 않는 에너지 믹스를 정책 기조로 잡은 것도 신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폭력이 된 기후위기에 맞서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한 책무입니다.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폭염은 국가별 사회안전망이 얼마나 탄탄한지 가늠하는 척도가 됐다”며 “폭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개인 노력뿐 아니라 공동체의 안전망 구축,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요? 일상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자동차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공열을 줄이는 데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열섬현상으로 이어져 피해를 낳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가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것 아닐까요. 책임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외면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악순환을 끊는 해법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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