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보기만 하는 건 재미없잖아…‘썰’ 더해진 콘텐츠가 뜬다!

2025-05-02

함께하는 외출 준비 영상 ‘겟 레디 위드 미’

수다와 만나 ‘공감’ 콘텐츠로

“전 남친에게는 ‘여사친’이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은 둘이서 밥 먹고 카페에 가고 그런 친구였죠. 하루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는데 느낌이 ‘쎄’하더라고요? 네, 맞아요. 환승(연애)을 했더라고요.”

에어쿠션을 두드리며 시작된 이야기는 아이라인을 그릴 즈음 절정에 이르고 입술 색을 채울 때까지 이어졌다.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 드라마보다 자극적인 이야기, 공감과 분노가 휘몰아치는 댓글까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삼박자에 묘하게 빠져들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이 즐겨본다는 ‘전 남친 썰 풀면서 하는 메이크업’ 편의 얘기다.

■ ‘방구석 수다방’이 열렸다

‘함께하는 외출 준비’를 콘셉트로 뷰티·패션 정보를 공유하며 2030 여성들 사이 인기를 끌어온 ‘겟 레디 위드 미(GRWM, Get Ready With Me)’가 진화하고 있다. 제품 브랜드 정보나 트렌디한 메이크업 팁에 초점을 맞춰온 기존 콘텐츠와 달리 굴욕 연애담, 면접 뒷이야기, 인간관계의 민낯 등 장르 불문 사연이 더해진 일명 ‘썰 GRWM’이 주목받는 모양새다.

‘썰’을 기반으로 변주된 ‘GRWM’은 화려한 기술보다 말의 힘, 즉 ‘수다술’로 승부를 건다. 혼잣말처럼 툭툭 내뱉는 이야기지만 메이크업이라는 익숙한 포맷 속에 담긴 개인의 서사가 예측 불가능한 전개로 몰입감을 더한다.

대학생 이가람씨(26)는 자신의 다이어트 경험담을 토대로 한 ‘썰 GRWM’ 채널을 운영 중이다. 얼핏 보면 뷰티 튜토리얼처럼 보이지만 그의 영상들은 10분짜리 콩트 극에 가깝다. 이씨는 “친구들은 ‘왜 이런 일은 너한테만 생기냐’고 묻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에피소드”라며 “다만 나는 그걸 재밌게 포장하는 재능이 있고 그것을 ‘영상 콘텐츠’라는 방식으로 옮긴 것”이라고 말한다.

‘썰 GRWM’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확장하며 ‘디지털 자아’를 표현하려는 이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유튜브 채널 오픈을 준비 중인 직장인 박지민씨(25)는 “평소 말이 별로 없는 ‘I(내향형)’ 인간이지만 메이크업할 때만큼은 수다 욕구가 올라와 ‘E(외향형)’ 인간이 된다”며 “테스트로 촬영한 영상을 친구에게 공유했는데 ‘진짜 너 맞아?’라고 하더라. 또 다른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 썰+뷰티=찐친 콘텐츠

현재 해당 콘텐츠들은 유튜브, 틱톡 등 개인화 알고리즘이 강한 플랫폼을 타고 빠르게 확산 중이다. 대중들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나눈 이들의 ‘썰’에 끌려들고, 댓글과 공유를 통해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간다. 짧은 영상 한 편이 일상의 감정을 나누는 창구가 되고 그 속에서 공감은 새로운 콘텐츠를 낳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런 과정에서 크리에이터의 말은 마치 나와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름도 모르는 타인의 이야기에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기묘한 감정의 근거를 “디지털 커뮤니티의 발전과 공감의 욕구”에서 찾는다. 메이크업은 그저 도구일 뿐, 이야기를 들려주고 댓글을 통해 응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교감이 콘텐츠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소희 미디어 분석 전문가는 “기존 ‘GRWM’이 혼자 꾸미는 콘텐츠였다면 ‘썰 GRWM’은 같이 공감하며 꾸미는 쌍방의 콘텐츠다. 사연 하나에 달린 수백 개의 댓글이 증명하듯, ‘썰’은 이제 개인의 독백이 아닌 집단의 대화가 되고 있다”며 “디지털 시대에 발현된 입담 문화이자 커뮤니티 역할을 하는 이 플랫폼에서 대중들은 시각적 만족을 느끼는 동시에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분석했다.

비대면 시대, 수다는 콘텐츠가 됐고 콘텐츠는 새로운 관계의 언어가 됐다. MZ세대에게 이와 같은 소통 방식은 고립감이나 외로움을 해소하는 창구로도 기능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29.3%의 Z세대가 특정 유튜버나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것만으로도 소속감을 느낀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대학생 김서율씨(21)는 “처음엔 뷰티 팁이 궁금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친구랑 화장하면서 수다 떠는 느낌이 좋아서 매일 챙겨보게 된다”며 “직장 내 스트레스나 연애 고민 같은 걸 이야기하는 크리에이터들 얘기가 마치 내 이야기 같아 위로를 받기도 한다”고 했다.

■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보는 재미, 듣는 재미, 느끼는 재미가 결합한 콘텐츠라는 점도 ‘썰 GRWM’의 인기 비결이다. 과거 텍스트 기반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던 ‘감정 공감’은 영상이라는 직관적인 매체로 옮겨져 생생한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여기에 ‘날것’의 전개와 솔직한 감정 표현은 SNS와 쇼트폼 영상, 도파민 자극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취향을 정조준한다. 이들은 해당 영상을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경험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시장도 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뷰티 브랜드들은 ‘썰 GRWM’ 크리에이터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 소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광고 효과를 유도하고 있다. 국내 뷰티 브랜드 관계자는 “하나의 영상이 끝날 때 대중들은 립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전 남친 얘기’와 함께 나온 제품의 이미지를 기억한다. 간접적이지만 강렬한 이미지, 그것이 ‘썰 GRWM’이 가진 영향력이다”라고 전했다.

정보보다 이야기, 기술보다 공감이 콘텐츠의 중심이 된 시대. ‘썰 GRWM’과 같은 수다형 콘텐츠는 더 다채롭고 다양해질 것으로 보인다. 정대석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무언가를 ‘잘 알려주는’ 것보다 ‘어떻게 공감하게 하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며 “콘텐츠의 진정성과 인간적인 매력이 점점 더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 앞으로는 맞춤형 콘텐츠들이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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