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뜬 '짧은 머리 北외교관'…정찰총국 소속 비밀 공작원이었다 [월간중앙]

2025-11-21

[단독 입수] 남미에 등장한 ‘짧은 머리 北 외교관’ 실체 전격 공개

공식 임명된 대사는 1년여간 공백…‘보위성·정찰총국 요원’으로 대체

외교관 신분의 정찰총국 요원, 해킹·밀수 등 공작 담당하는 제5국 소속

2025년 5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시(市) 보타포구. 번화가 ‘파사젱거리 39번지’에서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낯선 동양인이 나타났다. 짧게 올려친 헤어 스타일에 다부진 체격이 중국이나 일본, 한국 사람의 모습과는 다소 괴리감이 있었다. 하지만 낯선 동양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겉으론 이상할 것 없는 평범한 동양인이지만, 사실 그는 북한이 극비리에 관리하는 ‘핵심 자산’이었다. 〈월간중앙〉이 확보한 현지 증언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브라질에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A는 외무성 소속 정식 외교관이 아니었다. 첩보와 해외 공작 등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정찰정보총국(정찰총국) 소속 요원이다.

정찰총국은 단순한 정보 수집 기관이 아니다. 사이버 해킹, 공작 활동, 외화벌이 등 북한 체제의 생존과 돌파구를 마련하는 선봉 조직이다. 정찰총국 비밀 요원이 지구 반대편 브라질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뭘까. 그의 이름과 나이 등 모든 신원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프로필이 공개되더라도 큰 의미는 없다. 매번 신분을 바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은 ‘A’다.

A가 모습을 드러낸 브라질은 공교롭게도 북한 해커들에게 중요한 먹잇감 중 하나다. 구글 산하 사이버보안 기업 맨디언트(Mandiant)는 2024년 6월 발표한 보고서 〈Insights on Cyber Threats Targeting Users and Enterprises in Brazil〉에서 “2020년 이후 브라질을 겨냥한 정부 연계 해킹조직 가운데 북한이 31.7%로 2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1위는 중국(42%), 3위는 러시아(11.7%)다.

해킹의 흔적 위에 그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해킹조직들은 브라질의 암호화폐 및 핀테크 기업, 항공우주·방위산업체, 공공기관까지 파고들었다. 대표적으로 해킹 그룹 ‘북청’(PUKCHONG·일명 UNC4899)은 브라질의 암호화폐 전문가들을 표적으로 삼았고, 또 다른 그룹 ‘백두산(PAEKTUSAN)’은 항공우주 기업의 핵심 기밀을 노렸다. 맨디언트는 북한이 “브라질의 경제적·지정학적 위상 확대에 주목하고 있다”며, 경제력 성장에 따라 해킹을 통한 수익 창출 가능성 또한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해외에 나가 있는 해킹·외화벌이 조직을 관리하고 정보를 은밀하게 수집하는 임무를 띤 정보요원이 브라질에 등장한 것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첫 번째 단서다.

북한이 브라질을 어떤 대상으로 보는지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서는 외교라인의 이상기류다. 현재 주브라질 북한대사관에는 대사가 형식적으로 임명돼 있지만, 실제로는 1년 넘게 공백 상태다. 북한 외무성은 2024년 초 외무성 아프리카·아랍·라틴아메리카국 국장이던 송세일을 주브라질 대사로 내정했고, 브라질 정부는 같은 해 8월 14일 그에 대한 아그레망을 공식 승인했다. 통상 아그레망 승인 후 한 달 이내 부임 절차가 진행되지만, 송세일은 1년이 넘도록 브라질에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외교부는 올해 상반기 발간한 〈브라질 약황〉에서 송세일이 2024년 11월 부임했다고 밝혔지만, 〈월간중앙〉이 확인한 결과 그는 여전히 평양에 머물고 있었다. 브라질 외무부 대변인실 역시 〈월간중앙〉의 질의에 “해당 인사(송세일)의 브라질 입국 기록은 없다”고 공식 확인했다. 북한 측은 브라질 외무부에 송세일의 부임 지연 이유로 “개인 사정”을 내세웠으나, 이는 형식적인 답변에 불과하다.

당시 브라질 외교가에서는 “송세일이 2024년 2월 체결된 한·쿠바 수교의 여파로 문책성 대기 중이다”, “북한과 브라질이 외교관계 격을 ‘대리대사(Charged’ Affaires en pied)’급으로 낮췄다”는 설이 돌았다. 그러나 이 역시 모두 사실이 아니다. 특히 북한은 “브라질과 외교관계 격하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전달했다고 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건 국민의힘 의원실 질의에 대해 외교부도 “브라질이 북한과의 외교관계 격을 ‘대리대사’급으로 조정했다는 공식 발표는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브라질 정부는 여전히 아그레망을 철회하지 않은 채 북한 측 후속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브라질 외무부 관계자는 〈월간중앙〉에 “내부적으로는 송세일이 내년(2026년) 4월까지는 부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북한 측에서도 송세일의 브라질 부임 의사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브라질 외교 당국의 불만은 서서히 고조되고 있다. 브라질 외무부 내부에서는 북한이 평양 주재 브라질 대사를 홀대하는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송세일이 부임하지 않은 것은 물론, 주북한 브라질대사 역시 신임장을 제정하지 못해 공식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김건 의원실을 통해 외교부에 문의한 결과, 루이스 펠리피 포르투나(Luís Felipe Fortuna) 주북한 브라질대사는 2024년 6월부터 평양에서 근무 중이지만, 여전히 신임장을 제정하지 한 상태로 확인됐다. 신임장을 제정하지 않는 이유도 오리무중이다.

송세일이 없는 주브라질 북한대사관에 공식 등록된 외교관은 두 명뿐이다. 박문성 참사관과 2등 서기관 김정철이 그들이다. 그런데 취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브라질 당국에 등록된 김정철 2등 서기관은 이미 평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브라질 현지의 공식 외교 인력은 박문성 참사관 뿐인 셈이다. 현지 외교가 소식통에 따르면 박문성은 보위성(국가보위성) 출신으로 2023년 말 귀임한 김철학 전 대사 시절부터 북한대사관의 실세로 통했다고 한다. 박문성은 브라질 외교가에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북한 외교망의 중추 역할을 해왔다.

미등록 외교관, 강철민의 등장

공식 외교관들의 빈자리를 채운 건 두 명의 수수께끼 인물이다. 첫 번째 인물은 외무성 소속의 강철민 1등 서기관. 강철민은 브라질 현지에서 ‘정치참사관’이라는 직함을 사용하면서 송세일을 대신하는 임시 대리대사(Chargé d’Affaires ad interim)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브라질 외교부가 공개하는 공식 외교관 명단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한마디로 ‘미등록 외교관’이다. 주재국의 공식 승인이 반드시 필요한 직책인 임시대리대사를 미등록 외교관이 맡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려운 경우다. 브라질 외무부에 그 이유를 여러 차례 물었지만, 답변은 오지 않았다.

두 번째 수수께끼 인물은 서두에 소개한 정찰총국 소속 A다. A는 정찰총국 제5국 소속으로 전해진다. 해외 공작과 사이버 해킹, 외화벌이 조직을 총괄하는 핵심 요원이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2025년 들어 제재 명단에 올린 송금혁(7월)과 남철웅(9월)이 A와 같은 부서 출신으로 알려졌다. 송금혁은 북한 IT 인력을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 위장 취업시켜 외화를 조달했고, 남철웅은 담배 수출 사업을 통해 외화를 세탁했다. A도 이들과 유사한 공작 임무를 맡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A의 활동 반경은 대사관이 있는 수도 브라질리아에 국한되지 않고 광범위하다. 〈월간중앙〉이 확보한 현지 증언에 따르면, A는 브라질리아에서 약 1000㎞ 떨어진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에서도 여러 차례 목격됐다. 그는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도시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는 북한의 해외 공작 요원들이 외화벌이망과 정보 수집망을 관리할 때 흔히 보이는 행동 패턴이라고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보위성과 정찰총국이 현지에서 협업하며 외화벌이와 첩보활동을 병행하는 구조가 이미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브라질리아시(市)에는 보위성 출신 박문성 참사관이 남아 있다.

최근 들어 A가 브라질을 넘어 페루까지 넘나드는 게 현지 외교가에서 포착됐다. 페루는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자국 내 북한 외교관 전원을 추방하면서 북한과 외교 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상태다. 그런데 북한은 2023년, 10곳 안팎의 재외공관을 대량 폐쇄하면서도 이미 유명무실한 주페루 북한대사관은 남겨둬 중남미 외교가에서 궁금증을 자아낸 바 있다.

A가 외교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페루에 등장한 것과 ‘유령 대사관’을 남겨둔 것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선 비어 있는 페루의 북한대사관은 〈월간중앙〉 취재 결과, 쿠바의 민간조직인 쿠바혁명수비위원회(CDR)가 관리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현지 외교 소식통은 “쿠바 정부가 직접 개입할 경우 이미 수교를 맺은 한국과의 외교적 부담이 커서 민간조직을 내세웠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페루로 향하는 ‘유령 라인’

이는 북한이 향후 페루와 외교 정상화를 준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중남미 외교가 관계자는 “브라질은 페루 북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교·무역 루트가 밀접하게 연결된 전략 요충지”라며 “북한이 브라질 내 인력을 활용해 페루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수순”이라고 분석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브라질에 체류 중인 정찰총국 요원 A와 평양의 송세일, 그리고 쿠바혁명수비위원회가 관리하는 주페루 북한대사관은 하나의 비공식 외교 네트워크로 엮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브라질에 파견된 박문성(참사관), 정찰총국 소속 A, 외무성 소속의 미등록 외교관 강철민(1등 서기관)이 브라질과 페루 등 남미 외교 실무를 담당하는 삼인방이다.

브라질 정부도 이런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브라질 당국은 특히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활동하는 강철민이나 박문성이 아닌 A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지 소식통은 “A의 움직임이 멈추는 곳이 곧 북한의 국익이 작동하는 지점이며, 동시에 브라질의 안보·경제적 취약점이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페루는 전통적으로 친북 성향이 짙어 북한의 ‘잃어버린 교두보’로 불린다. 겉으로는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여전히 북한 네트워크가 살아 있는 곳이다. A가 페루 네트워크를 공작에 활용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중남미 현지 외교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찰총국 소속 A가 남미에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는 것은 브라질뿐 아니라 페루에도 이미 보이지 않는 북한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의 활동 양상은 미국 재무부가 제재한 송금혁·남철웅 두 요원과 매우 유사할 것이다.”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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