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팬 생존기] ①오늘도 서울행⋯'천근만근' 덕질 분투기

2025-10-24

행복에 감춰진 비수도권 팬들의 피·땀·눈물⋯"힘들어도 어떡해요"

돈도, 시간도 두 배 이상씩 들지만, 오늘도 서울로 가는 지방팬들

최근 5년 동안 수도권 내 공연 건수 60%, 횟수 70% 이상 유지

특정 인물·분야를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팬덤이 단순한 팬심을 넘어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겉으론 즐거움이 가득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지역의 벽이 존재한다. 공연과 팬미팅 등 주요 활동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면서 비수도권 팬들은 시간과 비용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열정을 놓지 않는 지방 팬들의 이야기를 통해 팬덤 문화의 또 다른 단면을 들여다본다.

"이 길로 들어오지 마세요."

먼저 매달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과 뮤지컬을 보러 서울에 간다는 직장인 김보민(26·가명) 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씨는 주 5일 일하고, 주말에 돈과 시간을 들여 덕질(좋아하는 일에 푹 빠지는 행동)하는 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경고하듯 이같이 답했다.

그는 "돈 부담되지만 그냥 돈 없다고 생각하면서 산다"며 "그래도 내가 제일 행복한 때가 언제인지를 떠올리면 항상 덕질할 때다. 보러 가야 하니까 버티자고 생각하는 것 같다. 덕질이 삶의 원동력이 된 지 오래다"고 말했다.

갈 때마다 시간과 비용이 부담되지만, 사랑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당일치기로 간다고 한들 교통비 7만 원, 식비 2만 원, 티켓·굿즈값 20만 원까지 더하면 한 번 갈 때 30여 만 원은 기본이다. 일찍 출발한 것도 서러운데, 기차 시간에 맞춰야 하다 보니 공연을 끝까지 못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김 씨는 "최근에도 기차 때문에 다 못 보고 뛰어 나왔다. 가면 정말 딱 공연만 보고 와야 한다. 한 번 지나간 공연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담돼도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며 "주말에 하루 갔다 오면 체력이 떨어져서 다음 날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것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적응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김 씨의 고충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비수도권 팬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실제 통계를 보면 비수도권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공연은 적고, 접근성은 떨어져 수도권에 비해 돈도, 시간도 두 배 이상 들여야 하는 실정이다.

25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데이터에 따르면 공연건수·횟수는 비수도권에 비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최근 5년(2021∼2025년 10월 23일) 동안 수도권 공연 건수는 60%, 횟수는 70% 이상을 유지했다. 반면 비수도권은 수도권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비수도권 팬들이 돈과 시간을 할애하면서 수도권으로 향하는 이유다.

비수도권은 공연장 규모가 작은데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어 공연·팬미팅 등이 집중되기 어렵다. 수도권은 공연·팬미팅이 있지만, 인구가 많다 보니 돈이 있어도 원하는 좌석을 확보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비수도권 팬들에게 시간과 비용 부담을 더하고 있는 현실이다.

김 씨는 "가끔 이러한 '수도권에 집중된 공연·행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데, 서울에 가서 사는 것밖에 답이 없는 듯하다"며 자포자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비수도권 팬들은 저마다 서러움을 안고 있으면서도 다양한 방식으로 팬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음 편부터는 가볍게 덕질을 즐기는 라이트 팬, 어디든 뭉쳐 다니는 트로트 팬덤, 혼자 가도 동지가 생기는 스포츠 팬덤을 차례로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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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 d_ailyrecor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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