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한국인 구금 사태가 남긴 것

2025-09-12

지난 9월 4일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는 가운데 중무장한 요원이 드론, 군용 차량 등을 이용해 급습했다. 전시작전을 방불케 했다. ‘저전압 작전(Operation Low Voltage)’으로 이름 붙여진 이번 작전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마약단속국(DEA)·연방수사국(FBI) 등이 총동원된 사상 최대규모의 불법이민자 단속이었다. 475명이 단속됐고 이 가운데 317명이 한국인이었다. 땡볕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조사받은 한국인은 손과 발, 허리에 쇠사슬을 찬 채 구금시설로 끌려갔다. 다행히도 이들은 구금된 지 8일 만에 전세기를 타고 고국 땅을 밟았다.

“존중받지 못했다” 한국인 상처

특정국 의존적 수출 다변화해야

한국인의 반응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처음 단속 내용이 알려졌을 때는 ‘이건 뭐지’하는 단순한 궁금증이 앞섰다. 하지만 무려 300명이 넘는 한국인이 대기업 투자현장에서 단속됐다는 소식에 놀랐고 한국인이 쇠사슬에 묶인 채 잡혀가는 동영상을 접했을 땐 충격을 넘어 모욕감마저 들었다. 한인 사회에서는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고 첨단시설 투자를 했는데 한순간 범죄자로 취급받았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미국 당국이 밝힌 이유는 단순했다. ‘불법체류 단속.’ 그러나 단순히 법 집행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미국 내 전체 불법체류자 약 1400만 명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1% 남짓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연방정부 관계기관이 총동원된 단속에 한국인이 희생양이 됐다는 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더구나 단속 현장은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미래 기술이 집약된 곳이다. 단속된 한국인 대부분은 밀입국자가 아니라, 공기를 맞추기 위해 공장에 단기 파견된 전문인력이었다. 그런데 ‘비자 목적과 실제 업무의 불일치’라는 이유로 수백 명을 무더기로 구금했다.

전문가는 이번 사건을 정치·경제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 우선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반이민 정서가 고조된 미국 내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반이민 기조를 지지층 결집에 적극 활용한다. 이번 대규모 단속은 단순 법 집행을 넘어 정치 이벤트 성격이 크다. 지지층 결집과 외국기업에 대한 경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그렇다고 해도 왜 가장 적극적으로 대미 투자에 나서는 한국 기업을 겨냥했느냐는 의문이 든다.

미국과 한국은 지난 7월30일 관세 협상에서 큰 틀의 합의를 했지만 아직 문서화를 못하고 있다. 두 나라는 한국의 대미 3500억 달러(약 486조원) 투자 패키지를 어떻게 구성하고, 이익을 어떻게 배분할지를 놓고 이견이 크다. 그래서 이번 단속이 교착상태에 빠진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한 대로 수용하거나 관세를 합의 이전 수준으로 내야 한다”고 한국을 압박했다. 또 일각에서는 한국의 중국 전승절 기념식 참석을 계기로 한국 정부에 경고를 보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미·중 갈등 구도에서 동맹국의 ‘균형 외교’ 제스처는 미국에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은 한국인에게 존중받지 못했다는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이런 일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는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한국 전체 수출의 18.7%가 미국, 19.5%가 중국으로 향한다. 미국과 중국에만 38% 가까이 의존한다는 건, 두 나라 관계가 흔들릴 때 한국 경제도 동시에 흔들린다는 뜻이다. 두 강대국에 의존적인 수출 구조는 외줄을 타는 곡예사와 같다. 무역도 리스크다. 경제 안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다변화된 무역 구조를 만드는 것, 이것이 경제 안보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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