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케이블TV업계가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 문제를 놓고 정부에 개선을 호소한 지 벌써 수년이다. 영업이익이 95% 감소하는 극심한 위기 속에서도 업계는 여전히 매출의 1.5%를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해당 고시가 개정된 2017년 이후 무려 7년간 징수율은 단 한 차례도 조정되지 않았다. 업계의 현실이 아무리 달라져도 정부의 답변은 변함없다. “검토하겠다.” 이제는 이 말조차 믿기 어렵다.
이쯤 되면 검토가 아니라 방치다. 유료방송 시장은 몇 년 사이 글로벌 OTT의 등장으로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케이블TV는 가입자와 매출이 급감하며 구조적 적자에 빠졌고, 전체 SO의 80% 이상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IPTV와 같은 징수율을 적용받는다. 지상파나 종편이 광고매출 기준으로 부담을 줄이는 감경 혜택을 받는 것과 달리, 케이블TV는 수신료 중심의 사업임에도 방송서비스 매출 기준으로 기금을 부담하고 있다.
이런 비합리성은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유럽 각국은 미디어 정책의 목표를 '공공성 강화와 산업 생태계 균형'에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매출 규모에 따라 콘텐츠 제작 기여금을 차등 부과하고, OTT에도 의무를 부여해 국내 콘텐츠 시장에 실질적으로 환류하도록 설계하고 있다. 국내 방발기금 제도도 이제는 실효성과 형평성의 관점에서 개편이 필요하다.
실기는 비용을 치른다. 기회를 놓치고 타이밍을 잃은 정책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 전통 미디어들이 변화의 시기에 적절한 제도 개선을 받지 못해 문을 닫은 해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7년의 미루기는 결국 제도개선의 기회를 정부가 놓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는 아직 괜찮다고 말하겠지만, 실제로는 이미 늦었는지도 모른다. 매년 '다음에'로 미뤄진 약속은 결국 산업의 체력을 갉아먹고, 생존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케이블TV는 재난방송, 지역경제 활성화, 지역채널 운영 등 정부가 요구하는 공공적 책무를 묵묵히 수행해 왔다. 2022년 기준 지역채널 투자액만 1190억 원에 달한다. 반면 수익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플랫폼과 포털은 여전히 방발기금 납부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기금의 취지를 생각할 때, 이는 사회적 공정성 측면에서도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과 같은 체계는 결국 낡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미디어 현실을 재단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방송은 공공재이면서 동시에 산업이기도 하다. 미디어 환경의 복잡성과 다변화가 가속화되는 오늘날, 기존 사업자만을 대상으로 징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산업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계는 현실을 반영한 징수 체계를 요구한다. 매출 구간별 차등 징수, 지역채널 투자에 따른 감면, 공공 기여도를 반영한 평가제 도입, 그리고 OTT와 포털 등 미디어 빅테크에 대한 기금 부과. 이러한 제안은 업계의 이익만을 위한 요구가 아니다. 미디어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공공성과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방발기금은 미디어 산업을 지원하고 공공재로서의 방송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게 제도를 운영하려면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정부의 결단과 실행만이 레거시 미디어를 지키고, 미디어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다. “검토하겠다”는 말 뒤에 숨기에는, 7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황희만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 heman21@kc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