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해군 해상초계기 P-3CK 추락과 관련, 민·관·군 합동사고조사위원회가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사고 원인을 놓고 기체 노후화를 의심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형 항공기에서 찾기 힘든 급작스러운 조종 통제력 상실에는 생산된 지 60년 가까이 된 기체의 예기치 못한 결함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지난달 31일 해군안전단장을 위원장으로 합동사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관제탑에 저장된 항적 자료와 사고기 음성녹음저장장치, 기체잔해 등이 분석 대상이다.
위원회에는 해군 안전단·수사단·해양과학수사센터와 공군 항공안전단·육군 항공사 등 군 당국, 해양경찰청 등이 참여했다. P-3 국내 도입 당시 기체 개조를 맡고 도입 이후 창정비를 실시해온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문가들도 위원회에 포함됐다. 군 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투명성·신뢰성·공정성을 담보하는 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사고조사에 필요하면 민간 항공전문가도 추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조사 초기인 만큼 사고 원인을 예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군 내부에선 조종사 과실보다 기체 결함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상당하다. 사고 다음날 공개된 영상을 보면 기체는 급격하게 흔들리는 움직임을 보인 뒤 불과 7~8초만에 뒤집혀 급강하하는데, 조종으로는 이 같은 비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전·현직 조종사들의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조종사는 “이는 전투기에서도 겨우 가능한 기동”이라며 “민항기와 유사한 기체 P-3에서 방향타, 보조익을 아무리 꺾어도 사고기처럼 비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조종 통제력 상실의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미다.

군 안팎에선 유압 장치 등 조종 계통의 문제를 우선 들여다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직 공군 관계자는 “유압 장치가 작동되지 않았거나 유압 펌프의 케이블이 끊어져 방향타 등이 순간 먹통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우선회를 한 기체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상 상황에 대처할 틈도 없이 뒤집혀 추락한 것처럼 보인다”고 추정했다. 실제 관제탑과 마지막 교신에서 비상 상황과 관련한 내용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사고였을 수 있다.
기체 노후화에 따라 정비 사각지대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은 그래서 나온다. 록히드마틴이 1960년대 후반 P-3B로 제작한 해당 기체는 미 해군에서 약 20년간 운용되다 2010년 한국 해군에 도입됐다. 도입 전 KAI가 인수해 핵심 부품을 교체하고 최신 전자장비를 탑재하는 등 상당 부문 개조가 이뤄졌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도태 시기는 5년 이상 남아있고, 4.5년인 창정비 기간은 올해 연말 도래할 예정이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미군에서 퇴역한 뒤 한국에 들어오기 전 미 본토 노지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10~20년간 머물던 기체였다”며 “노후 항공기일수록 복합적인 원인으로 사고가 나곤 해 창정비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엔진 문제 역시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사고기인 P-3CK의 경우 터보프롭(프로펠러·가스터빈) 4개 엔진 중 하나만 가동해도 최소한의 활공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안정성이 뛰어나 급강하를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난기류나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능성도 거론된다. 다만 당일 기상이 좋았던 데다 육안으로 새떼가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한편 해군 초계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장병 4명의 영결식은 1일 오전 경북 포항 해군항공사령부 강당에서 해군장(葬)으로 거행됐다. 영결식을 주관한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정조종사 박진우 중령(해사 68기), 부조종사 이태훈 소령(해사 73기), 전술사 윤동규 상사(부사관 260기), 전술사 강신원 상사(부사관 269기)의 이름을 부르며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 바다를 굳건히 지켜내고 유가족을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며 끝까지 보살피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