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공격, AI 앞에선 무력해질 것”

2025-07-21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을 본격화한 올해 4월 미국 경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기대하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예측은 같았으나 근거가 서로 달랐다. ‘로널드 레이건 경제 교사’로 불리는 스티브 행키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관세가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을 일으켜 미 경제를 침체에 빠뜨리면 트럼프가 물러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에 ‘중국을 아는 이코노미스트’인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유럽과 중국 등 주요 교역국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1980년대 일본처럼 협상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벌면서 반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두 전문가의 말을 요약하면 ‘침체 vs 반발’이다. 그런데 최근 제3의 요인을 제시한 이코노미스트가 나타났다. 5월 『유배 경제학: 세계화가 실패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Exile Economics: What Happens If Globalisation Fails)』를 펴낸 벤 추(Ben Chu·사진) 영국 BBC 경제 전문기자다. 그는 영국 프로 이코노미스트협회(Society of Professional Economists)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유배 경제학』에서 콩과 밀, 반도체 등 현대 경제의 필수품이 어떻게 생산돼 유통·소비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글로벌 공급망과 가치사슬이 취약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된 이유를 보여준다. 화상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세계화에 대한 불신

책 제목인 『유배 경제학』이 눈길을 끈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스스로 유배 떠나는 경제 교리 또는 정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이 바로 유배 경제학의 생생한 사례다. 피할 수 없는 상호의존을 외면하고 관세전쟁 등을 통해 경제적 자급자족(economic self-sufficiency)을 추구하는 시도들이 모두 유배 경제학이다.”

유배 경제학은 세계 최대 시장을 무기화하는 트럼프에 의해 시작됐고, 유럽과 중국은 유배 경제학에 반발하는 양상 아닌가.

“미국의 트럼프만이 추구하는 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유럽과 중국 등에서도 유배 경제학이 많은 일자리와 경제 안보를 보장하는 ‘진보적인 정책 또는 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주요 나라가 유배 경제학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세계화의 혜택이 불평등했다. 세계화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급증했다. 이들의 불만이 정치적 압력이 됐다. 여기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2020년 팬데믹,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더해졌다. 이들 사건 때문에 미국인뿐 아니라 유럽인과 중국인마저도 글로벌 공급망과 가치사슬을 불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글로벌 공급망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됐다. 세계화는 ‘되돌릴 수 없어 운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불평등과 금융위기, 팬데믹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두 가지 시나리오

트럼프 관세전쟁 때문에 세계화가 위기를 맞고 있다. 관세전쟁 이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여기(영국)에선 관세전쟁보다 무역전쟁(trade war)이란 말을 더 많이 쓰는데, 이후 세계를 가늠할 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아주 극단적인 사나리오다. 1930년대 대공황과 미국의 관세장벽(스무트-홀리법) 이후 세계 교역망이 사실상 파편화했다. 수출입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주요 나라가 서로 적대화했다. 그 결과가 바로 2차 세계대전이었다. 현재 트럼프의 관세가 어느 정도 부과될지 등이 불확실하다. 하지만,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트럼프가 올해 4월에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상호관세를 발표하며 관세 공격을 본격화했다. 이후 관세 유예와 협상 등 우여곡절을 거친 뒤 8월 1일부터 한국 등 주요 교역국 수출품에 애초 발표보다 한참 낮은 관세를 매길 전망이다. 그런데 중국과 브라질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미국에 보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1930년대와 다른 모습이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앞으로 미국이 상당 정도 글로벌 상호의존성에서 이탈할 수 있지만, 나머지 지역에선 세계화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AI 시대 낡은 무기

어느 쪽 가능성이 더 클까.

“미국의 역할이 줄어든 세계화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대 경제인 미국 시장에 접근하는 게 지금보다 어려워지지만, 나머지 세계가 글로벌 공급망과 가치사슬을 유지한다는 얘기다. 이때 교역 규모는 정체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관세에 미래가 달린 듯한데, 그렇다면 관세전쟁이 어느 정도까지 이어질까.

“(관세 부과를 통해) 산업을 자국화할 수 있는 업종과 할 수 없는 업종이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은 자국화할 수 있다. 반면에 디지털 경제, 특히 AI 부문은 글로벌 생태계가 없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유럽, 중국, 한국 등의 인력(지식)과 자원(전력 등), 시설(데이터센터)로 이뤄진 총체적 생태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생성형 AI의 경우 엄청난 지식과 데이터가 필수다. 지식과 데이터 등엔 국경이 없다(국경이 없으면 관세도 없다).”

사실 트럼프의 관세는 근대 초기 중상주의 유산이다. 유형의 제품을 교역할 때 쓰인 무기였다. 이처럼 낡은 무기인 트럼프 관세의 충격이 미 경기침체나 유럽 등의 반발보다 AI 산업의 특성 때문에 무뎌질 수 있다는 추의 전망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벤 추=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현대사를 공부한 뒤 저널리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인디펜던트지의 경제 편집장을 지낸 뒤 BBC로 옮겨 경제 전문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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