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이웃나라 일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687만명. 사상 최대 숫자를 기록했지만 넘쳐나는 관광객으로 인해 새로운 숙제도 생겨났다. 관광공해다. 숙박세는 물론 외국인에 대한 이중가격제까지 언급되고 있는 일본에서 최근 ‘다른’ 방식으로 문제 해결에 나선 곳을 찾아가봤다.
지난 14일 오전 일본 시즈오카(静岡)현 후지(富士)시. 신칸센이 오가는 신(新)후지 역에서 차로 10여 분을 달리자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굴뚝이 보이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길을 지나 주택가로 접어드니 콘크리트로 된 육중한 다리가 나타난다. ‘후지산 꿈의 대교’다. 차에서 내려 다가가니, 모자를 눌러쓴 안내원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건다. “어디서 오셨어요?” 한국인이라고 답하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조언했다. “여기선 큰 소리로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주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요. 이쪽은 이곳 주민들이 사는 주택이니 이쪽 사진은 찍지 말아 주세요.”


계단을 올라가니 한 관광객이 스마트폰으로 후지산을 연신 찍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왔다는 관광객은 “후지산을 보러 일본을 왔다”며 “구름 때문에 후지산 정상이 잘 보이지 않아 아쉽지만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을 뱉어냈다. 대만에서 온 또 다른 여성 관광객(22)은 “인스타그램에서 후지산 촬영 스폿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기대를 갖고 찾아왔는데 와보길 잘했다”고 활짝 웃었다.
인구 24만명의 공업 도시 후지시에 길이 68.2m의 후지산 꿈의 대교가 만들어진 것은 2016년 3월이다. 우루이(潤井)강을 가로지르는 이 다리는 후지산을 향해 직선으로 쭉 뻗어있다. 옛부터 제지 산업이 번성한 후지시에선 공업단지를 오가는 트럭들이 이 다리를 자주 오간다. 원래는 지역 주민들이 산책로로 삼던 호젓한 곳이었다. 그러다가 2023년부터 다리로 올라가는 계단이 후지산 촬영 명소로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상에서 입소문을 타며 갑자기 유명해졌다.

마쓰무라 다카노리(松村岳典) 후지시 교류관광과장은 “갑자기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했다. 많을 때는 하루 2000명에 달하는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시청에 후지시 주민들의 민원 전화가 빗발쳤다. 관광객의 쓰레기 무단 투기에 대한 불만부터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너무 시끄럽다는 짜증까지 그전까지 없었던 민원이었다. 차도를 점령한 채 후지산 사진을 찍는 위험천만한 관광객들도 있었다고 한다. 마쓰무라 과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화장실이 매우 급해지자 마을 주민 집에 찾아가 벨을 누르기도 하고, 인근 하천에 용변을 보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관광공해(overtourism)’였다.
그는 ‘(후지산이) 안 보이게 해야하나’라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인근의 야마나시(山梨)현의 경우 ‘후지산이 잘 보이는 편의점’이 유명해자, 관광 공해를 막으려고 가림막을 세워 관광객의 촬영을 막았다. 마쓰무라 과장은 “후지시에도 후지산이 잘 보이는 편의점이 있는지 찾아봤을 정도로 관광공해는 큰 골칫거리였다”고 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묘수를 냈다. 바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다. 이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5월 주민과 관광업계, 도로와 다리 관리자에 해당하는 경찰, 후지시 등이 참여하는 ‘후지산 꿈의 다리 관광과 지역 공존을 생각하는 모임’을 조직했다. 이 모임이 제일 처음 한 것은 주민들의 불만과 어려움을 듣는 것이었다. 원칙을 세웠다. 주민이 지적한 문제는 ‘해결법’을 빠르게 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가령 ‘소음이 심하다’는 지적엔 안내판을 설치하고 안내원을 상주시키는 것으로 해결하겠다며 주민을 설득했다. 회의를 거듭하며 다리 밑 공터에 주차장과 간이 화장실이 들어섰다. 안내원들은 관광객들 때문에 주민들이 계단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줄서기’도 안내했다. ‘매너’를 알리기 위해 직접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홈페이지도 영어와 한국어, 중국어 등 여러 언어로 볼 수 있게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 출신의 오오카 나루오(大岡成夫) 관광추진어드바이저도 거들었다.

후지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관광객의 ‘온기’가 지역사회에 돌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나섰다. 지난해 11월엔 푸드트럭을 설치하고 주차장 부지를 이용해 기모노 대여 실험에 나섰다. 후지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하트 루트’와 후지산 모양 빙수 체험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해법이 통하면서 숙박객이 급증했다. 2023년(4~9월)만 해도 1117명에 그쳤던 숙박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 4903명으로 4배 늘었다. 관광객에 대한 불만도 사그라들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이 곳이 인기를 끌며 지난해엔 5000명 가까운 한국인들이 후지시에서 숙박했다. 마쓰무라 과장은 “후지시는 주력이 제조(物作り)인 도시지만, 관광의 힘으로 세계에서 유명 도시가 되고 있다는 자긍심이 생겨나고 있다”며 “오버 투어리즘이라는 마이너스 요소를 플러스로 만들어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후지시를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다나카 도시노리(田中俊徳) 규슈대 준교수는 관광공해에 대해 “(상생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지역사회와 관광객이) 윈윈(win win)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과정에선 상당히 힘이 든다고 한다. 후지시의 경우 다리 근처에 주차장을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는 운도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나카 교수는 “이해 관계자가 대책 마련에 참여하는 역할 분담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