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속 우리나라도 AI 핵심 인프라 지원을 위한 '국가AI컴퓨팅센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민관이 공동 투자해 센터를 설립, 공공·기업·연구자 등에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AI 인프라를 적시 지원하는 게 목표다.
정부는 센터 설립 시기를 2027년으로 설정, 연내 사업자를 선정해 내년 착공을 시작한다. 이를 위한 사업자 선정 작업이 내달부터 본격 진행된다. 센터 설립 부지를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 센터 내 소프트웨어·하드웨어, 네트워킹 등 각종 설비를 설치·운영하는 정보기술(IT) 기업이 참여를 검토 중이다.
국가를 대표하는 AI 센터라는 점에서 업계 관심이 높지만 세부 요건을 놓고 고심 중인 곳이 많다. 접수 마감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내달 초에는 최소한의 컨소 윤곽이 나올 것이라는 업계 추측이다.
◇국가AI컴퓨팅센터, 어떻게 추진되나
국가AI컴퓨팅센터는 공공참여자와 민간참여자가 공동출자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구축·운영한다. 공공참여자는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정부를 비롯해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다. 민간참여자는 △데이터센터 기업 △클라우드 기업 △통신서비스 기업 △건축·건설 기업 △지자체·도시공사 등이 참여한다.
사업 자금은 초기 자본금으로 공공(정책금융기관 포함)과 민간이 각각 2000억원씩 4000억원을 마련한다. 이후 2027년까지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에서 SPC에 저리로 최대 2조원 가량을 지원할 예정이다. 사업 총 투입금액이 2조 4000억원 가량이지만 정부가 추가 예산 등을 투입할 가능성도 있어 최종 사업 규모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민간참여자는 올해 AI컴퓨팅 서비스 조기 개시와 2027년 내 센터 개소를 목표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국내외 AI 반도체를 조합(국산 반도체 비중 50% 목표)해 2030년까지 총 1엑사플롭스(EF·1초에 100경번 부동소수점 연산 처리 능력)급 컴퓨팅 자원을 확보, 기업·공공 등에 AI 인프라를 지원해야 한다. 2045년까지 AI 컴퓨팅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서비스 구성방안·과금체계 등도 제시해야 한다.
정부는 다음달 19일부터 30일까지 참여 희망 기업·컨소시엄의 사업참여계획서를 접수하고 6월부터 기술·정책 평가(1단계)를 거쳐 7월 투자·대출 등 금융심사(2단계) 후 이르면 8월말께 최종 적정 기업 또는 컨소시엄을 선정한다. 9월 특별위원회를 개최해 사업 시행계획을 보고한 후 10월께 SPC 설립을 위한 협약을 민간참여자와 체결, SPC 설립 후 11월부터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업계 컨소 '지분율' 놓고 사업 참여 고심
이 사업은 데이터센터 구축·운영기업과 AI컴퓨팅 서비스 구축·운영 기업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국내 데이터센터 구축·운영 경험을 보유한 통신사·IT서비스 기업을 비롯해 AI 컴퓨팅 서비스 구축·운영을 담당하는 클라우드 사업자(CSP, MSP 등)가 참여를 타진 중이다.
그러나 당초 예상과 달리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모든 기업이 사업 참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지분율'이 변수다. 올 초 사업 추진 계획이 발표될 당시만 하더라도 지분율에 대한 명확한 지침은 없었다. 정부가 지난달 사업참여의향서를 제출한 기업에 배포한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공모지침서'에 지분율이 명시되면서 기업 고심이 깊어졌다.
지침서에 따르면 프로젝트회사 출자자별 지분은 공공참여자 51%, 민간참여자 49%로 정했다. 다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제출한 사업 참여계획서를 기초로 특별위원회의 승인을 득해 실시협약에서 출자지분율에 대한 사항을 최종 확정한다는 점을 명시해 추후 변경 가능성도 있다.
한 클라우드 업체 관계자는 “현 상황대로면 지분율에 따라 공공 기관에 준하는 각종 감사 대상이 될 것”이라며 “국정감사 대상은 물론이며 흑자든 적자든 질타가 이어질 것이 불보듯 뻔해 사업을 수주하고도 골치거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가장 적극적이던 통신사도 신중 분위기다.
한 이통사는 최근 사업 참여를 접었다 재검토 중이다. 이 이통사 관계자는 “이 사업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참여를 포기할 수도 없는 애매한 사업”이라며 “정부가 사업 지분 51%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자원을 투자하더라도 수익성을 내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그렇다고 참여를 안 하자니 경쟁사들이 국가 컴퓨팅 인프라를 확보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수익성 확보도 불투명…지자체도 신중 분위기
이 사업으로 제공하는 컴퓨팅 자원의 수요처 불확실성도 사업 참여 걸림돌 중 하나다.
한 IT서비스 업체 담당자는 “국내 기업의 서비스형 GPU(GPUaaS) 서비스를 이용해 GPU를 빌려 쓰는 스타트업, 연구기관, 대학 등을 보면, AI 모델 학습 과정에 GPU를 집중 사용하다 학습이 끝난 후에는 빌린 GPU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곳이 많다”며 “국가AI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을 통해 컴퓨팅 자원을 이용하려는 수요 역시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민간이 수익 확보 방안을 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지침서에 따르면 특히 국가 컴퓨팅 센터가 자생력을 갖고 운영·유지될 수 있도록 정책 목표 달성 및 사업성 확보 수익구조 방안을 함께 제시 해야 한다.
또 다른 클라우드 업계 관계자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역시 이 사업에 클라우드 컴퓨팅 인프라 제공하는 것에 대한 투자 대비 효과(ROI)를 거두기 위해, 인프라 이용 수수료를 높게 책정하려는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참여 사업자마다 각자 수익을 챙기려하다보면 주 사업자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어 고심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서 국가AI컴퓨팅센터 유치 의사를 밝혔던 지자체도 최근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광주, 부산 등 주요 광역시를 비롯해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등 도단위와 포항시, 천안시 등이 사업에 적극적이지만 컨소시엄 구성을 위한 민간 기업과 매칭 작업이 쉽지 않은 탓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어떤 기업과 손잡을지가 차별화 포인트인데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컨소시엄 파트너 찾기가 순탄치 않은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대부분 지자체가 철저한 보안 속에 민간 기업과 마지막까지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음달 대선이 맞물리면서 “차기 정권 의지에 따라 국가AI컴퓨팅센터 입지가 바뀌거나 변동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침서에 밝힌 계획과 내용대로 모든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 현대인 기자 modernm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