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수명 연장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의료·바이오 산업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 발달로 인간 유전체 관련 정보·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 몸은 약 30조~40조 개 세포로 이뤄진 거대 도시와 같다. 이 도시에서 각 세포가 어디에 위치하고, 어떤 일을 하며, 이웃 세포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어떨까. '공간오믹스(Spatial Omics)'는 이런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공간오믹스는 세포·조직 단위에서 유전자가 어디서 발현되고, 어떤 단백질이 작동하는지 마치 지도처럼 시각화한다. 기존 유전자 분석이 세포 위치를 구분하지 않고 집단적인 평균값만 보여줬다면, 공간오믹스는 각 세포의 정확한 위치·기능을 보존하면서 분석한다. 마치 도시 전체 평균 소득만 아는 것과 각 동네·건물별 경제 활동을 정확히 아는 것의 차이와 같다.
이 기술이 우리 삶에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암과 같은 복잡한 질병을 생각하면 답이 명확해진다. 암 조직은 암세포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 면역 세포, 혈관 등이 복잡하게 얽힌 생태계다. 공간오믹스로 정확한 생태계 지도를 그릴 수 있다면, 어디를 공략해야 암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따라서 공간오믹스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 공간오믹스는 신약 개발 과정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약물이 체내 어디에 분포할지 예측하는 '타깃 시뮬레이션', 약물 체내 이동 경로·효능을 평가하는 '제형 시뮬레이션', 개발 약물 독성·효과를 예측하는 '임상 시뮬레이션' 등이 가능해졌다. 신약 개발 시간·비용을 줄이고,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을 가능하게 한다.
기술적으로 공간오믹스는 세 가지 영역으로 구성된다. 조직 각 위치에서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발현을 측정하는 공간 전사체학, 단백질 발현·분포를 파악하는 공간 단백체학, 이 모든 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멀티오믹스 통합이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데이터는 수백만 개 고해상도 이미지와 바이오마커 정보를 포함하는 초고차원 빅데이터로, 이를 처리하려면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고속 연산, 클라우드 인프라, AI 기반 패턴 인식 등 최첨단 AI·정보통신기술(ICT)이 총동원된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매우 밝다. 올해 2억8000만 달러 규모인 공간오믹스 시장은 2030년까지 4억3000만 달러로 성장이 예상되며, 연평균 10% 이상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단순 시장 성장을 넘어, 미래 의료가 개인 질병 리스크를 사전 예측하고 맞춤형 치료를 제공하는 정밀의료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세기 유전체 지도가 생물학 판을 바꿨듯, 21세기 공간오믹스가 질병 진단·예방·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차세대 혁신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혁명적 기술이 우리 일상에 완전히 자리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우선 AI 활용 통합 특화모델을 개발해 진단 정확도를 대폭 향상시켜야 할 것이다. 또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 처리할 수 있는 고해상도 분석과 병렬 연산 기술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장비와 분석 방법 간 표준화가 중요하고, 불필요한 절차·규제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 적극적인 국내외 기술 교류로 글로벌 경쟁력·주도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공간오믹스는 단순 기술 혁신을 넘어 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다. 우리 몸의 정밀한 지도를 그려 근본 질병 원인을 파악하고, 개인 맞춤형 치료를 가능케 하는 이 기술이 하루빨리 일상화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 산학연 협력, 기술 중요성에 대한 국민적 이해·관심이 필요하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 의료의 청사진, 그 중심에 공간오믹스가 있다.
글 : 도승희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연구위원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