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소설가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의 창작은 산고(産苦)에서 시작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창작의 고통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20일 완주 오스 갤러리에서 열린 전북일보 리더스아카데미 12기 1학기 8강에서 윤흥길 소설가는 “디지털 시대일수록 아날로그의 깊은 감성과 인간의 창작 정신이 더욱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문명이 인간의 창작 본능을 대체하려는 시대. 윤 작가는 아날로그 감성과 인간 고유의 감정, 그리고 고통을 동반한 창작의 가치를 통해 “인간만이 완성할 수 있는 이야기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웠다.
건강 문제로 강연을 사양해오던 그는 “리더스아카데미 강연만 수락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농담 섞인 요청 끝에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세상을 꿈꾸며’라는 주제로 1주일 동안 공들여 작성한 원고를 들고 단상에 올랐다.
윤 작가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시계로 풀어 설명했다. 아날로그 시계는 사용자가 시간을 직관적으로 읽는 것이 아닌, 한 번 더 ‘뇌를 굴려’ 판단하게 만든다. 반면 디지털 시계는 숫자를 그대로 보여줘 즉시 정보를 인식하게 한다.
이처럼 아날로그는 사유의 여지를 주지만, 디지털은 즉각적이고 직선적인 판단만을 허락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사회는 편리함을 줬지만, 나이든 세대에겐 오히려 두려움의 공간”이라는 말에는 청중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는 19세기 미국 작가 에드거 앨런 포우의 글 ‘멜젤의 체스’를 언급하며, 기계가 인간의 두뇌를 흉내 내는 시대를 예언한 포우의 통찰에 주목했다. 체스기계 속에 사람이 들어가 기계를 조종하던 과거의 ‘속임수’가 이제는 진짜 AI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체스 전문 컴퓨터 ‘딥블루’가 인간 챔피언을 꺾고, 바둑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사례를 들며, “기계의 승리는 인간의 자존감에 충격을 안겨줬다”고 회고했다.
창작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윤 작가는 AI가 집필한 소설과 시가 실제 문학상에 응모되고 수상작으로 검토되는 현실을 언급하며, IBM이 만든 창작용 AI ‘브루투스1’의 이름에 주목했다. “자신을 만든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처럼, AI가 인간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경고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AI 문학의 한계를 분명히 했다. “AI가 쓴 소설은 얼핏 그럴듯하지만, 단어 선택은 어색하고 문체는 뒤죽박죽”이라며 “창작은 고통과의 싸움이다. 인간 작가는 한 문장을 고치고 또 고치는 ‘산고(産苦)’의 과정을 거치며 끝이라는 단어를 쓸 때 쾌감을 느낀다. 그 감정은 AI가 결코 모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AI가 만든 창작물을 “감흥 없는 글”이라 평하며 “독자들이 가벼운 작품과 산고로 얻은 문학의 무게를 스스로 구별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끝으로 그는 자신의 대표작 '문신' 을 언급하며 “이야기 속에 담긴 ‘상복’처럼, 오랜 시간 글을 읽고 함께해준 독자들에게 감사한다”는 인사를 전하며 이날 강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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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호 lee729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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