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세계선수권대회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내달 20일 서울에서다. 한 달을 앞둔 지난 21일엔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서채현·이도현 등 국가대표들이 선전을 다짐했다. 같은 날. 한 ‘전직 국가대표’는 홀로 재활 트레이닝을 했다. 경기도 고양의 암벽장에서였다. 아직 10대인 그는 왜 태극마크를 반납하고 재활에 매달리고 있을까.
16세에 최연소 국대, 끈질긴 재활
“희망 버리지 않고 희망 심어줄 것”
4년 전, 처음 가본 볼더링장은 별천지였다. 볼링장이 아닌, 볼더링장이라는 단어부터 생소했다. 볼더링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이 된 스포츠클라이밍의 한 분야다. 역동적이고 성취감이 크다 보니 진작부터 2030세대에게 인기였다. 이들은 벽에 붙어서 땀을 흘리다가도 커피를 홀짝이거나 책을 읽는다. 뜨개질하거나 아예 드러누워 자기도 한다. 분위기 파악 못 하고 갔더니 아재 취급받기 딱 좋았다. 이렇게 2010년대 후반부터 MZ세대를 중심으로 스포츠클라이밍 인구가 급증했다. 현재 추산 100만 명. 이번 서울 세계선수권대회 개최도 1990년대부터 선수 저력을 키우고 동호인 저변을 넓힌 결과란다.
그 볼더링장에서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90도 인사를 했다. 당시 중학교에 막 들어간 송윤찬(18)이었다. 이미 인터뷰로 안면을 튼 사이. 매니저이자 트레이너인 아버지와 함께 왔다. 송윤찬도 초등학교 때 재미 삼아 스포츠클라이밍 홀드를 잡았다. 그때 온 느낌. 자신의 가능성이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골프 대디’만 있는 게 아니다. 스포츠클라이밍판 대디, 그러니까 ‘클라이밍 대디’쯤 되겠다. 아닌 게 아니라,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에 가보면 부모들이 많다. 시즌인 봄부터 가을까지 대회가 열리는 주말마다 차박을 하는 가족도 있다. 송윤찬은 13세에 ‘영재발굴단’에 나오더니 김자인(37)과 민현빈(36)을 롤모델로 삼았다.
2년 전. 그 볼더링장을 다시 가봤다. 2030의 옷은 화려해졌다. 민소매는 얌전한 편이고 탱크톱과 레깅스가 주를 이뤘다. 송윤찬도 있었다. 그의 옷에는 ‘팀 코리아’가 박혀 있었다. 16세. 최연소 국가대표였다. 앞서 만났을 때, 중학교 1학년이었던 그가 세운 목표는 이랬다. ‘2023년 국가대표, 2024년 올림픽 참가, 2026년 아시안게임 메달권 진입.’ 밑도 끝도 없는 게 아니었다. 당시 여러 대회에서 ‘국대’ 형들의 성적을 앞섰다. 첫 목표는 이미 달성했지만 2024년 파리 올림픽 쿼터에는 들지 못했다. 그런데 위경련이 반복됐다. 심상치 않았다. 진단 결과, 호지킨 림프종 4기. 청천벽력. 태극마크를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열두 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았다. 그 6개월간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빠졌고, 온몸의 근육은 사라졌다. “복귀가 쉽지 않을 것 같네요”라고 그가 말했다.
석 달 전. 경기도 포천에서 스포츠클라이밍 대회가 열렸다. 동호인에게도 문을 열었고, 경기도 대표 선발도 겸했다. 출전 선수만 200명이었다. 스포츠클라이밍 흐름이 변했다. 2030들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누가 더 많이 가나’를 겨루던 실내 볼더링에서 17~18m 벽에서 ‘누가 더 높이 가나’를 가늠하는 실외 리딩으로 옮겼다. 그래서, 이 포천 대회에는 유난히 2030 동호인이 많았다. 예전 볼더링장에서처럼, 누군가 어깨를 툭 치고 90도 인사를 했다. 송윤찬이었다. 그는 듬성듬성해진 머리를 가리기 위해 비니를 쓰고 있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중이에요”라고 했다. 경기도 대표 선발전에서 2위에 만족하는 이유였다.
이틀 전. 송윤찬은 이제 비니를 쓰지 않는다. 그는 “이번 세계선수권은 관중으로 참가한다”며 웃었다. 하지만 4년 전처럼, 그는 다시 계획을 세웠다. 2026년 국대 복귀와 아시안게임, 2028년 올림픽 …. 송윤찬이 말했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요. 제가 아직 어리지만, 아픈 이들에게 희망도 심어주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