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세워두지 않으면 마음을 졸이는 습관이 있다. 이 버릇은 어린 시절에 형성된 거라고 확신한다. 컴퍼스로 둥글게 그려둔 24시간 안에서 기상과 취침, 공부와 놀기를 토막토막 내어 두는 ‘생활계획표’ 탓을 해 본다. 물론 그대로 지킬 턱이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획대로 살고 있지 않기는 하다.
계획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최근 기가 막힌 변명거리를 찾았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조각난 시간 구멍에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상한 나의 일과를 채워 넣는 행위다. 모호하게 ‘놀기’ ‘일하기’로 쓰는 이도 있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노트 정리하기’ ‘성수동 카페 ○○에서 에스프레소 마시기’처럼 더 구체적 행동을 기입하기도 한다. 여행 계획표를 보면 그 사람의 꼼꼼함이 나온다고 하지 않나. 모든 동선과 지출 내역과 짐의 무게가 그 토막 난 시간표 안에 다 반영돼 있다. 그런데 변수가 발생한다면? 계획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오면서 인간의 삶은 더 많은 변수들과 얽히게 됐다. 휴가 기간에는 온전히 쉬려던 계획을 접고 원격으로 업무를 하는 일이 다반사다. 공부하다가도 세상사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스마트폰을 꺼냈다가 릴스 지옥에 빠진다. 기술만 1과 0으로 디지털일 뿐, 우리의 삶은 더 복잡하게 변수를 이고 지고 살게 됐다.
그런데 우리 생각은 여전히 생활계획표 시대에 머무는 것 같다. 업무를 가르고 쪼개서 시간표와 연봉 표에 차곡차곡 끼워 넣고 있다. 대표적인 생각이 인공지능(AI) 기술에 대체되는 일자리에 대한 발상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 그토록 가치 기반으로 토막 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AI 기술로 어떤 일이 대체될지를 살피는 모든 기반을 보면 우리의 업무들이 모두 언어가 되어 조각나 있었다.
이런 것이다. 기자의 일을 ‘기사 쓰기’로만 뭉뚱그리는 순간, 어쩌면 적당히 데이터를 분석해 적당히 비판하며 기사화하는 AI에게 대체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충분한 범위까지 파고들며, 적당한 시점에 보도하고, 계속해서 문제해결 양상을 지켜보고, 타인과 관계 맺기를 충실하게 이행해가는 그 복잡한 틈새들을 어느 한 테크 기업에서 엔드투엔드로 디자인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일의 본질을 기가 막히게 잘 이행해서 인간의 그 틈새 업무가 무의미해진다면 AI로 싹 바뀔지도 모르겠다. 그로써 인간을 온전히 기능적 노동 모듈로 보게 된다면, AI가 자리를 죄다 대신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얼마 전 한 기업가가 내게 넌지시 한 말은 퍽 남는다. “기업이 지속되기 위해선, 그 기업의 문화가 필요하다. 개개인의 업무를 조각조각 정의하기보다는 동양의 순환이라는 관점으로, 모든 것이 선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할 때 비로소 직원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고 기업을 지속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일은 토막 나 있지도, 조각나 있지도 않다. 일을 하는 행위 자체로 분명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그 가치와 틈틈이 벌어지는 숱한 변수들이 말로 글로 정의되지 않을 따름이다. ‘AI 시대, 일의 미래’라는 주제를 마주할 때, AI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는 것, 오히려 그곳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좀 더 발전적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