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고인이 법정에서 구속된 이후 단순히 ‘공소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경우, 그 자백의 신빙성을 단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제주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계약직 공무원인 A씨는 2020년 10월 트랙터를 운전하던 중 농로에서 좌회전하면서 일시정지하지 않고 좌우를 살피지 않은 채 왕복 2차선 도로로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직진하던 차량과 충돌했고 피해자는 두부 외상 및 출혈로 사망했다.
1심 재판부는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입 지점에서 일시정지하지 않은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피해자를 조기에 발견했더라도 사고를 회피할 수 있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과정에서 채택된 증인이 불출석하자,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증거인멸 등의 우려를 이유로 법정구속했다. 이후 A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교차로 진입에 우선권이 없다는 재판장의 지적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과실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는 이를 유죄 근거로 보고 A씨에게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이 자백의 신빙성 및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구속된 사람은 허위자백을 해서라도 자유를 얻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며 “피고인이 구속된 이후 갑자기 자백한 사건에서는 단순한 ‘공소사실 인정’ 진술의 신빙성을 각별히 유의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호인이 제출한 의견서는 일시 정지 여부나 좌우 확인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적극적으로 시인한 내용이 없다”며 “이는 단순히 교차로 진입에 우선권이 없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취지에 불과하고, 증인 불출석 또한 피고인의 관여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