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화공작 피해자들, 국가배상 일부 승소···“유엔에 ‘정부 2차가해’ 진정서 낸다”

2025-04-30

1980년대 ‘붉은 사상을 푸르게 만들어주겠다’며 정부가 군대로 끌고간 대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문을 당하며 수십장의 반성문을 썼다. 대학 동기들을 감시하고, 인적사항을 밀고하라는 강요도 받았다. 군 생활 뒤에도 일명 ‘프락치’로 활동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 약 40년이 흐르고 나서야 이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로부터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최규연)는 30일 녹화공작·프락치 강요 피해자 4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각 1000만~6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애초 원고들이 청구한 위자료는 인당 1억5000만원이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제출한 진술서와 자료 등에 비춰봤을 때 개별적 피해 내용들을 그대로 다 인정하기 어렵다”며 일부 손해만 인정했다.

피해자들은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피해 사실 일부만 인정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원고 측 대리인 임한결 변호사(법무법인 원곡)는 “재판부는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이 있었는데도 일부 사실관계를 불인정했다”며 “굉장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원고 박두범씨도 “평생 배제당하며 살아왔는데 국가는 지금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그간 정부가 소송에서 주장해온 ‘장기 소멸시효’도 문제 삼았다. 민사 사건에서 사건 당사자는 소멸시효에 따라 ‘손해를 인지한 날로부터 3년’(단기) 또는 ‘불법행위 발생으로부터 5년’(장기)이 지나면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 정부는 녹화공작 피해자들에게 장기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불법행위가 발생한 지 수십년 지났으므로 피해 여부와 관련 없이 소송을 진행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반면 피해자들은 진화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2022년이 기준점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장기 소멸시효 주장이 ‘2차 가해’라고 비판한다. 녹화공작 피해자 박만규 목사는 “시효가 소멸됐다는 논리는 2018년 헌재에 의해서 이미 위헌적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라며 “이런 국가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상처가 다시금 돋아나는 경험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2018년 헌법재판소가 일률적으로 장기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조치였다. 최근 대법원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장기 소멸시효를 적용할 수 없다는 판결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날 녹화공작 피해자들은 ‘UN 진실·정의·배상·재발방지 증진에 관한 특별보고관’에 정부의 장기 소멸시효 주장에 개입해달라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2023년 법무부는 유엔 인권이사회에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가 장기 소멸시효로 인해 권리를 온전히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관이 헌재·대법원 결정을 존중하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의견서를 냈지만, 현재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 목사는 “이번 진정을 통해 국가의 조직적 폭력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는 소망을 품어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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