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앞에는 갈등과 분열을 넘어 국민 통합을 이루고 민주주의 가치를 다시 세우는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다. 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군대도 그중 하나다. 새 정부는 강력한 국방개혁으로 임무에 전념하는 군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국방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군의 뼈대이자 허리인 초급간부를 튼튼히 해야 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이 있다. 눈에 보이는 위기보다 보이지 않는 위기가 더 심각하다. 지금 우리 군에서 ‘수면 아래의 빙산’은 초급간부다. 초급간부는 임관 5년 미만의 장교와 부사관을 지칭한다. 이들은 군 간부 전체의 40%나 차지한다.
5년 미만 장교·부사관 수급 비상
군 활력 회복 위한 통큰 투자 절실
각종 행정업무 부담도 덜어 줘야

지난해 초급간부 전역자들 간담회에서 한 중위가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장교의 길을 선택할 땐 나름 국가관이나 헌신 등 눈에 안 보이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부대 생활을 할수록 그런 가치들은 점점 희박해졌고, 전역을 앞둔 지금 후회한다.” 지금 초급간부들이 위태위태하다.
2024년 국방통계연보를 보면 2020년부터 국방 헬프콜로 고충 상담을 요청한 간부 비율이 병사를 추월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병의 50% 이상이 10년 차 미만의 간부다. 이들 중에 중사 이하 계급이 80%에 이른다. 간부 징계도 2022년 이전까지는 1000건 미만이었는데, 2023년 1200여 건으로 20% 이상 급증했다. 대다수 임관 5년 차 미만이다. 개인적 사유가 많지만, 업무 부담 등 부대 관련 요인도 상당하다.
초급간부 수급도 비상이다. 임관 5년 차 인원의 전역이 증가하고 있고, 육·해·공 사관학교나 학군사관(ROTC) 후보생들의 조기 이탈도 증가 추세다. 지원율은 10년 전의 반 토막 수준이다. 과거 학군단장 보직은 한직으로 분류됐으나 요즘 “지원율을 제고하라”는 특명을 현행 작전부대 못지않게 치열하게 수행 중이다.
출생률 저하로 병역 가용자원 감소도 심각하다. 2015년 43만8700명이던 출생아 수는 2024년(23만8300명)엔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들이 군에 입대하는 시기가 대략 2035년부터다.
만약 초급간부 관련 지원과 정책이 지금 수준에 머문다면 2035년쯤 징병제나 모병제 중 어떤 병역제도든 간에 지금보다 수급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 자명하다. 인구 감소로 민간사회와 인재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군 간부의 길을 기꺼이 선택하는 젊은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걱정이 앞선다.
새 정부는 군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 초급간부에 대해 통 크게 투자해야 한다. 국방부는 공무원 대비 기본급 2배 인상 등 보수·수당의 대폭 증액에다 1인 1실 확보 등 낡은 주거시설 개선에 전력투구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그동안 병영 정책은 병사 위주였다. 이제는 초급간부 처우 개선에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 병사들과의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몇 가지 정책 제언을 해본다. 먼저 사회와 연계한 멘토링 프로그램이나 경력 개발 또는 진로 설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면 어떨까. 이를 통해 군대와 개인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자는 취지다. 그들의 희생을 사회가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사기 진작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초급간부들의 행정 업무 부담을 대폭 줄여줘야 한다. 각 군 참모총장이 야전 전투부대의 행정 부담을 대폭 줄이라 지시해도 말단 제대는 여전히 바쁘다. 특히 초급간부는 간부 집단의 하부구조에 있는 만큼 더 그렇다. 이들은 병력관리·훈련만으로도 벅찬데, 장기 복무하려면 장애인 배려, 다문화가정 이해, 성인지 등 정부 차원과 연계된 다양한 교육도 소홀할 수 없다.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건이 열악해졌다.
지속적 관심과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국방부 장관 직속으로 ‘초급간부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제안한다. 지난해 전체 GOP(일반 전초) 소초를 서쪽에서 동쪽 끝까지 일주일 동안 방문했다. 당시 초급간부의 처우 개선 요구가 빗발치던 때라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안보의 최일선에서 적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그들의 눈빛을 보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더 늦기 전 초급간부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정책을 기대한다. 2035년은 먼 미래가 아니다. 군의 미래가 결정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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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홍식 전 육군 정훈감, 예비역 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