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T 해킹 대응 실망한 소비자들
“가격만 보고 통신사 결정할 것”
“보조금 120만원” 사활 건 방어전
면제 기간 이후도 출혈경쟁 예고
“실망감이 컸죠. 위약금 면제도 자의로 한 게 아니고 정부가 하라니까 떠밀려서 한 거잖아요,”(SK텔레콤 해지 고객 박모씨)
SK텔레콤 위약금 면제 기간 종료를 앞둔 14일 오후 서울 구로구 신도림 테크노마트 9층에는 점포마다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신도림 테크노마트’는 파격적인 보조금으로 누리꾼들 사이에서 휴대폰 구매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날 SK텔레콤을 해지하고 KT나 LG유플러스로 이동하는 시민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박씨는 “원래는 위약금 40만원을 물어야 하는데 (위약금 면제) 기간이 끝나기 전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유모씨는 “10년 동안 SK텔레콤을 써왔지만 해킹사고로 신뢰가 무너졌다”며 “고객감사 패키지라고 내놓은 것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늘은 무조건 가격만 보고 통신사를 선택할 생각”이라고 했다.
‘불법보조금’도 불사하는 이곳은 통신3사의 가입자 쟁탈전을 가장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는 현장이다. 최신형 휴대폰을 ‘공짜’로 주는가 하면 단말기 가격보다 보조금이 더 많은 ‘마이너스 폰’까지 등장했다. 통신3사가 신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공시지원금과 판매장려금을 올린 결과다.
판매장려금은 휴대폰 제조사와 통신사가 대리점, 판매점 등 유통업체에 지급하는데, 성지로 불리는 집단판매장에서는 장려금 대부분을 소비자에게 ‘리베이트’로 제공한다. 현재 공시지원금의 15%가 넘는 추가지원금은 불법이다. 하지만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22일)를 앞두고 있어 불법과 합법의 경계는 이미 무너진 듯 보였다.
“오늘 (오후) 3시에 보조금 닫혀요.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휴대폰을 둘러보던 기자에게 A판매점 사장은 “SK텔레콤의 보조금이 가장 많은데 곧 마감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A판매점이 공개한 공시지원금을 포함한 보조금은 통신3사 모두 120만원이 넘었다.
갤럭시 S25를 기준으로 SK텔레콤에 신규 가입을 하면, 단말기 가격(115만5000원)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 20만원을 더 얹어주겠다고 했다. 단, 월 10만9000원 요금제를 택해야 한다. 월 6만9000원짜리 요금제를 택하면 S25를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LG유플러스는 월 11만5000원 요금제에 가입하면 15만원을, KT의 경우는 월 11만원 요금제로 12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SK텔레콤이 공격적으로 보조금 지급에 나서며 ‘수성’을 꾀한 덕일까. SK텔레콤이 해킹사고를 신고한 지난 4월22일부터 이날까지 가입자 순감 규모는 60만1376명에 그쳤다. 83만5214명이 이탈했지만 23만여명의 가입자를 다시 뺏어온 결과다.
특히 SK텔레콤이 TV·인터넷 등 결합상품은 ‘위약금 면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대량 이탈’을 막은 요인이다. 이날 신도림 테크노마트에서 만난 김모씨는 “온 가족의 인터넷, 휴대폰, TV가 SK 결합으로 묶여 있기 때문에 계산이 너무 복잡해 포기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해지 시 ‘위약금 면제’를 받을 수 있는 기간은 14일로 종료되지만 향후 이통사 간 보조금 경쟁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판매점 사장은 “보조금 경쟁이 불붙었던 게 거의 10년 전인데, 곧 유사한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며 “당장은 통신사가 ‘눈치게임’을 벌이겠지만 한 곳이 올리기 시작하면 덩달아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