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 ‘전시 원유 비축’에 나서고 있다. 이란산 원유 수출의 90% 이상을 중국이 사들이는 구조인 만큼, 향후 이란산 공급이 차단될 경우 정유업계에 큰 충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란의 핵 협상이 시작된 지난 4월 이후 중국이 수입 원유 중 일부를 정제하지 않고 곧장 비축하는 방식으로 ‘전략적 유류 저장’을 확대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7일(현지시간) 전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달 정유업체들의 원유 처리량은 하루 1392만 배럴로, 전월(1412만 배럴) 대비 줄었고 전년 동월보다도 1.8% 감소했다. 같은 기간 원유 수입량은 하루 1097만 배럴로 전월보다 줄었고, 자국 내 생산량은 소폭 증가해 435만 배럴을 기록했다. 결과적으로 정유소가 실제로 가공한 양을 제외하면 하루 약 140만 배럴의 잉여 원유가 발생한 셈이다. 올 들어 5개월간 누적 잉여량은 하루 평균 99만 배럴로, 4개월간 누적치였던 88만 배럴보다 늘어났다. 업계는 이를 중국이 비축에 활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로이터의 아시아 원자재 칼럼니스트 클라이드 러셀은 “중국은 중동 리스크에 대비해 수입량을 앞당겨 확보하고 있다”며 “향후 러시아처럼 제재를 받은 국가에서 더 큰 폭의 할인 가격으로 원유를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란은 미국과 서방의 제재가 본격화된 2018년 이후 중국 등 우방국에만 원유를 수출해왔다. 원자재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현재 이란 원유 수출의 90% 이상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중국은 인민폐로 결제하고, 이란은 그 대가로 중국산 공산품을 받는 구조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중국 산둥 지역에 밀집한 소규모 민간 정유소 ‘티팟’들이 주 고객이다. 이들은 국영 기업과 달리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2022년부터 마진 방어를 위해 값싼 이란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고 있다. 이란산은 제재를 받지 않는 오만산(Oman Blend) 등보다 배럴당 2~5달러(2700~6900원)가량 저렴하며, 과거에는 11달러(1만 5100원)까지 할인된 기록도 있다.
문제는 이란의 수출 경로가 매우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란산 원유는 대부분 페르시아만 북부 카르그 섬에서 선적되는데, 이 곳이 공습을 받을 경우 수출이 사실상 마비된다. WSJ는 “이란이 공격받을 경우, 카르그도 타깃이 될 것”이라며 “이란산 수입이 중단되면 중국은 가장 싸고 안정적인 원유 공급원을 잃게 되는 셈”이라고 짚었다. 이란의 대응 조치로 한국의 원유 수입 70%를 의존하는 호르무스 해협이 봉쇄될 수도 있단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