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석의 입장] 하정우 AI 수석 임명, 기대와 우려 사이

2025-06-18

2000년대 초 디지털 시대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던 김대중 정부는 중소기업 정보화 사업에 예산을 많이 썼다. 정부의 자금 지원 아래 중소기업들은 ERP(전사적자원관리)라는 이름의 정보 시스템을 너도나도 구축했다. 정부가 시스템 구축 비용을 지원해 주니 안 받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있었다.

덕분에 IT 업계에는 활력이 도는 듯 보였다. ERP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를 자처하는 회사들이 수백 개 난립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눈먼 돈을 따먹기 위한 회사들이 좀비처럼 늘어났다.

정부 주도의 이런 정보화 지원 사업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들은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프로세스와 데이터 기반의 현대적 경영을 하게 됐을까? ERP 소프트웨어들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 정책은 지금까지도 실패한 정책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많은 국민의 혈세를 썼지만 중소기업의 혁신이라는 성과도, 국내 IT 산업의 발전이라는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이 때 많은 기업들이 ERP를 도입했지만 성공적이었던 사례는 많지 않다. 정부 지원금을 노리고 급조한 시스템의 품질이 좋았을 리 만무하고, 이 회사들이 지속적인 기능개선과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했을 리는 더더욱 만무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때 ERP를 도입한 회사들은 솔루션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나중에 다시 새로운 ERP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된 셈이 됐다.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던 ERP 전문기업들은 얼마 못 가 대부분 사라졌다.

정부는 중소기업 정보화라는 좋은 뜻으로 사업을 진행했지만, IT업계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오히려 시장을 교란한 정책이라는 비판 사례로 남아있다.

올바른 정책 목표를 세웠어도 실행을 위한 설계를 잘못하면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은 올바른 목표를 세우는 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계에서 그 실행안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해도 무시당할 때가 많다. 무어라도 했다는 평가라도 받기 위함일 것이다.

예를 들어 ‘타다 금지법’이 그랬다. 타다금지법은 ‘타다 베이직’과 같은 변칙 서비스를 금지시키고 ‘플랫폼운송사업’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타다도 플랫폼운송사업자로 등록하고 정부가 만든 새로운 규제 틀 안에서 비즈니스를 펼치라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플랫폼운송사업자 등록을 할 회사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IT업계가 볼 때 플랫폼운송사업자는 정부로부터 가격과 공급량 규제를 받는 제2의 택시회사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타다도 플랫폼운송사업자로 참여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정부와 국회는 끝내 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정부와 국회는 새로운 플랫폼 택시 시대를 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타다금지법은 타다만을 금지시켰을 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 예상대로 현재 플랫폼운송사업자 제도는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다. 타다라는 위협적 존재가 사라진 택시 시장은 카카오모빌리티 독점이 고착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IT 업계는 기대감이 크다. AI에 대한 새 정부의 강한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서 유명한 AI 전문가인 하정우 전 네이버 AI 연구소장을 대통령실 AI 수석에 임명한 것도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앞선 사례에서 봤듯 좋은 뜻과 의지만으로는 정책을 성공시킬 수 없다. 눈먼 돈을 많이 푼다고 산업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시장은 정부의 정책이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잘 듣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인지 잘 판단하는 것이 유능한 정부를 만드는 기준점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술과 산업을 잘 이해하는 AI 수석 인선은 긍정적이다. 이제 그의 전문성을 최대한 활용해서 목표대로 작동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술과 산업은 잘 알지만 정치를 잘 모르는 그가 대통령실 내에서 고립된 섬으로 남지 않도록, 정책 결정 과정에 실질적인 연결 통로와 권한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심재석 기자>shimsky@byline.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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