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지나면 못 먹는다…새로운 메뉴로 승부하는 성수동의 카레 연구소 [쿠킹]

2025-04-29

한 끼 식사를 위해서 몇 달을 기다려본 경험이 있으신가요. 한 식당을 예약하기 위해 800통이 넘는 전화를 걸고, 10개월이 넘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누구보다 먹고 마시는 것에 진심인 푸드 콘텐트 에디터 김성현의 〈Find 다이닝〉을 시작합니다. 혀끝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다이닝을 찾는(Find), 그가 추천하는 괜찮은(Fine) 식당을 소개할게요. 읽기만 해도 배가 부를 정도로 생생하고 맛있게 쓰여진 맛집을 만나보세요.

김성현의 Find 다이닝 ㉘ 어제의카레 성수Lab

‘3분 카레만 익숙한 당신에게, 새롭고 신선한 카레 변주곡’

STORY

“카레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3분 카레’를 떠올릴 정도로 익숙하고 뻔한 음식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카레는 변주하기가 굉장히 쉽고 재미있는 메뉴라고 생각했죠. 재료를 하나만 바꾸거나 조리 방식에 약간의 차이만 주더라도 맛과 풍미가 많이 바뀌기 때문에 카레의 새로운 매력을 알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오래된 자동차 정비소와 인쇄소 그리고 창고부터 지금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는 브랜드들의 팝업스토어까지.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독특한 매력을 자아내며 사람들로 북적이는 성수동 메인 거리에서 10분. 주택들이 마주 보고 있는 다소 한적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Lab’, 즉 연구소라는 이름을 내걸고 독창적인 카레를 선보이는 가게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어제의카레 성수Lab’. 2016년 이태원 보광동에서 문을 열어 햇수로 10년째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레 전문점인 ‘어제의 카레’의 새로운 공간이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자연주의’ 카레를 표방하는 ‘어제의카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재료와 조리 방식에 변주를 주고, ‘연구소’ 답게 끊임없이 신메뉴를 개발하는 곳이다.

지난 1월 문을 연 이곳은 클래식한 프렌치 파인다이닝을 시작으로 캐주얼한 와인바를 거치며 11년간 경력을 닦아온 최영근(30) 셰프가 메뉴 개발과 요리를 담당하고 있다. ‘연구소’를 내세우는 만큼, 이곳에서는 기존 보광동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스프 카레와 고등어 카레를 맛볼 수 있다. 평범한 카레 같지만, 최 셰프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쌓은 요리 실력을 카레에 녹여내려 노력했다.

“크고 거대한 것보다는 매일같이 작고 디테일 부분에 변화를 주며 카레의 가치를 올려보고 싶었어요. 봄이면 향이 좋은 제철 채소인 냉이를 숯에 구워 카레와 함께 내어준다거나, 항상 아침 시장을 찾아 제일 신선하고 질 좋은 고등어만 구해서 요리하죠. 이곳은 편하게 올 수 있는 밥집이지만, 요리사로서 제가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손님들이 더 격식 없고 편안하게 느끼실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특히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3주 간격으로 바뀌는 ‘오늘의 카레’다. 가게 오픈 초기에는 쪽파를 퓌레로 만들어 섞은 실험적인 카레 등을 시작으로 오징어, 너비아니 등 다양한 토핑을 올리거나 드라이 커리로 타코를 만드는 등 독창적인 시도를 주로 했다고. 하지만 최 셰프는 카레의 본질을 방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편안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며 메뉴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탄생해 현재 ‘오늘의 카레’로 서비스되고 있는 메뉴는 ‘함박스테이크 카레’다.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함박스테이크이지만 이곳에서는 소고기 대신 돼지고기만을 사용해 직접 스테이크를 만들고 있다. 특히 최 셰프는 우드 파이어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자신의 장기를 살려 숯을 활용한 조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촉촉하면서도 숯의 은은한 풍미가 입혀진 함박스테이크를 맛볼 수 있다.

여느 때보다 무더운 여름을 앞두고 다음에 선보일 ‘오늘의 카레’로는 면을 국물에 찍어 먹는 일본 요리인 츠케멘 스타일의 스프 카레를 준비 중이라고. 최 셰프는 스프 카레가 차가워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기름기와 이로 인한 텁텁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오늘도 연구를 거듭하며 최적의 조합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EAT

기존 카레 집과 달리 신선하고 새로운 메뉴도 눈길을 끌지만, 그보다 더 입과 코를 사로잡는 것은 카레 위 올라가는 토핑이다. 불을 다루고 숯으로 조리하는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장기라고 밝힌 최영근 셰프의 말처럼, 각종 야채와 고기 그리고 고등어 등 토핑 대부분이 숯 위에서 조리된다. 최 셰프는 “숯불을 활용하면 재료를 다루는데 더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만큼 재료의 맛이 한층 더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늘 숯불 그릴 앞에서 불을 지키고 있는 그는 비장탄과 3번 말린 참나무 장작을 함께 쓴다고. 최 셰프는 카레처럼 향이 강한 음식에 지나치게 강한 향이 추가로 입혀지면 맛의 본질을 해칠 수 있어 은은하고 얕은 풍미의 비장탄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참나무 역시 그을림이 없고 은은한 향을 입히기 위해 3번 말린 것을 고수한다고 강조했다.

숯으로 조리한 토핑도 훌륭하지만, 보광동과 달리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스프카레’와 ‘고등어카레’ 또한 별미다. 특히 스프카레는 최 셰프가 최적의 조합을 찾기 위해 한 달 동안 레시피를 수없이 변경한 덕에 3달 동안 2000그릇이 판매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메뉴 개발 초기 닭을 시작으로 각종 해산물과 돼지, 소까지 모두 써본 결과, 닭과 사골을 동시에 사용하는 황금비율을 찾아내 육수를 끓인다. 여기에 대량의 양파를 12시간 이상 소고기 기름에 볶아 만드는 카레를 소량 섞는 덕분에 지나치게 묽지 않고 텍스처가 살아있으면서도 향과 맛이 마지막까지 여운이 있게 남는 스프카레가 탄생했다.

하루에 30그릇만 선보이는 고등어 카레도 마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많은 식당들이 등푸른생선이 가진 특유의 기름진 풍미를 요리에 활용하지만, 최 셰프는 고등어 내 수분과 기름기를 최소화하는 조리 방식을 택했다. 그는 “생선의 기름기가 입안에서 터지면 카레와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분기를 빼고 껍질만 바삭하게 구워서 카레와 함께 섞어 먹었을 때 최고의 밸런스가 나온다. 고등어가 카레 소스를 충분히 흡수할 수 있도록 요리했다”라며 메뉴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간 한정으로 선보이고 있는 ‘오늘의 카레’인 함박스테이크 카레도 기회가 된다면 맛보아야 하는 메뉴다. 돼지고기의 살코기와 지방을 적절히 배합해 육즙이 터져 나오는 함박스테이크를 완성했다는 최 셰프의 말처럼 이곳의 함박스테이크는 씹는 맛이 살아 있는 동시에 진한 육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무엇보다 이 역시 숯에서 조리되기 때문에 과하지 않고 은근한 불향이 한층 더 음식의 매력을 더한다.

김성현 푸드칼럼니스트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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