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마시고 걷는 일을 관찰하면

2025-08-04

“편안하게 두발로 일어서서 시작합니다. 발바닥이 땅에 단단하게 닿아있는 감각과 몸의 무게가 어떻게 발바닥을 통해 전달되는지를 느껴보세요. 잠시 동안 서 있는 자세 자체를 알아차리고, 몸 전체의 감각에 주의를 기울여 보세요.”

얼마 전, 전국 31개 사찰에서 찾아온 스님과 선명상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조계사교육관에서 한 시간용 선명상 프로그램을 시연하였다.

유연한 흐름의 일부인 한 걸음

세상과 하나로 연결된 차 한 잔

내가 곧 세상이니 다툴 일 없어

“한 걸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평소처럼 무의식적으로 걷는 대신 한 걸음을 구성하는 미세한 과정들을 하나하나 분해해서 알아차리는 겁니다. 먼저 오른쪽 발을 들어 올리려는 ‘의도’가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세요(의도). 이어 그 의도에 따라 오른쪽 발뒤꿈치가 땅에서 떨어지고, 발바닥 전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감각을 느낍니다(들어 올림). 그리고 발이 공중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의 움직임과 균형의 변화를 관찰합니다(나아감). 이어서 발뒤꿈치가 다시 땅에 닿고, 발바닥, 발가락 순서로 부드럽게 착지하는 감각을 섬세하게 느껴봅니다(내려놓음). 그렇게 체중이 뒷발에서 앞발로 옮겨가는 압력의 변화를 알아차립니다(체중 이동). 이제 왼쪽 발에 대해서도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걸음을 해체해서 관찰하다 보면 ‘한 걸음’이란 명확한 경계가 있는 분리된 단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조건 짓는 연속적인 흐름임을 알 수 있다. 들어 올림이 있기에 나아감이 있고, 나아감이 있기에 내려놓음이 있다. 이렇게 유연하고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온전히 머물러 보도록 하는 과정이 ‘한 걸음 걷기 명상’이다.

‘나는 화를 잘 내는 사람이야!’라는 고정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화라는 감정이 특정 조건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구나’라고 바라보면 화도 사라지는 것이다.

한 걸음 걷기 명상은 부지불식간 고정된 나를 세밀한 관찰의 힘으로 감옥에서 해방시켜 삶의 유연한 흐름에 동참하도록 돕는다. 한 걸음, 한순간이 그러하듯이 삶은 수많은 내적 외적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 걸음만이 아니라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관찰의 대상이요, 수행주제가 된다. 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예외가 아니다.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 앞에 놓인 흰 백자에 담긴 연초록 빛깔의 녹차 한 잔을 마실 때에도 그 과정을 통찰하는 것이 곧 수행이다. 차를 마시기에 앞서 잠시 눈을 감고 이 한 잔의 차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건들을 마음의 눈으로 선명하게 떠올려 보는 것이다. 겨울을 이겨낸 차나무에 내리쬐는 태양의 에너지를 보며, 봄비가 스며들어 뿌리를 통해 나무줄기로 올라오는 것을 상상해 본다. 차나무를 지탱하고 영양분을 공급하는 대지의 기운을 느끼고, 차를 따는 손길, 뜨거운 솥에 차를 덖고 만드는 사람의 수고를 본다. 그리고 작게 말린 차와 뜨거운 물을 다관에 넣고 우려내어 우리 앞에 놓아주는 정성스런 손까지…. 차 마시는 ‘끽다’라는 하나의 과정 속에 모든 것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주의 거대한 그물망 전체가 이 차 한잔에 수렴되어 있음을 생생하게 시각화하면, 차 한 잔을 마주하는 일이 곧 우주 전체를 보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이 차 한잔을 두 손으로 들어 정성스럽게 마십니다. 눈을 감고 다시 시각화합니다. 차 한 잔의 에너지가 내 몸의 일부가 되고,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듭니다. 그 에너지를 얻은 나는 이제 일어나 걷고, 말하고, 일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습니다.”

차 한 잔이라는 존재가 나의 활동을 통해 세상 전체로 퍼져나가고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구성하는 무한의 그물망 속으로 다시 흩어져 들어가는 것을 알아차린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피어오른다.

의상대사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을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라고 표현하셨다.

작은 몸짓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우주에 대한 통찰로 이어지는 기적이다. 이렇듯 수행은 우리의 한 걸음이 새로운 생명으로 가득한 발걸음이 되게 하며, 차 한 잔이 세상과 하나로 연결되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럴 때 비로소 스스로를 비하하는 공연한 자책과 상대를 억누르는 과다한 경쟁과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고독한 외로움은 사라지게 된다.

꼭 선명상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행하는 몸짓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는 습관을 들여 보자. 어느 순간 스스로 마음이 평안해지고, 이웃의 마음까지 평안하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금강 스님 중앙승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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