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계 안팎 관계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인간’ 이승엽에 대한 평가는 매우 호의적이다. “너무 좋은 사람”은 기본이다. “감독님 잘 부탁드려요”라는 민원성 청탁(?)도 자주 들을 수 있다. 현장에서 의례 듣는 말과는 다른 느낌의 진정성이 전해진다. 심지어 야구장 관리 직원들도 “감독님이 계속해서 팀을 이끌려면 두산이 야구를 조금 더 잘해야 할텐데요”라고 응원의 목소리를 낼 정도다. 현역 시절 ‘국민 타자’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이승엽은 실력은 물론 인성까지 갖춘 ‘야구 레전드’로 평가받는다.
삼성 시절 대선배인 이만수 전 감독도 최근 SNS에 “내가 (선수)이승엽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실력보다 인성에 있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상 선배들의 말을 경청했고, 어떠한 지시에도 불평이 없었다. 그런 태도는 시간이 지나 스타가 되고 나서도 변하지 않았다. 많은 후배들이 성장하면서 변화하거나 흐트러지는 경우를 봐왔기에, 그의 일관된 성품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승엽 선수는 야구 외적으로도 늘 모범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지도자’ 이승엽은 정작 두산팬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승엽은 지난 2일 첫 감독 커리어에서 계약 기간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휘봉을 내려놨다.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성적 부진에 따른 경질이다. 이 전 감독은 2022년 10월 두산 베어스 11대 사령탑에 올랐다. 두산은 이 전 감독을 영입하며 3년 계약 조건에 역대 초보 사령탑 최고 대우 수준인 총액 18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5억원)으로 안겼다. 지도자 경험이 전무했지만 리더십과 경쟁력은 물론 흥행카드로서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이 전 감독은 결과물도 냈다. 직전 시즌 9위까치 추락한 두산을 첫 시즌에 5위, 2024시즌에 4위까지 이끌며 ‘가을잔치’ 무대까지 섰다. 내용적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한 성적이다. 앞서 8년간 두산을 이끌며 황금기를 주도한 김태형 감독(현 롯데)의 뒤를 잇는 부담감에 거센 세대교체 흐름과 맞물린 난관을 극복해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쉽지 않은 과제가 많았다. 오재원발 수면제 대리 처방 파장이 팀을 덮쳤고, ‘전력의 반’이라 할 수 있는 외국인 투수들까지 끊임없이 부상에 노출됐다. 이 전 감독은 김택연 등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돌파구 삼아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두산팬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가을야구’에서의 처참한 실패 때문이다. 두산은 4위로 오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1승 어드벤티지를 얻고도 KT에 2연패하며 탈락했다. 18이닝 연속으로 득점이 없었다. 두산은 2015년 와일드카드 경기 제도가 생긴 이래 5위 팀에 진 최초의 4위 팀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겼다.

그러자 이날 경기 뒤에는 이승엽 감독을 향한 불만을 표출하는 두산팬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팬들은 “이승엽 나가”를 외쳤다. 두산은 직전 시즌에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올랐고,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이승엽 감독 체제에서 두산은 포스트시즌 3전전패를 기록했다.
두산팬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지난 시즌부터 불펜투수 혹사 논란 등 팬들은 이 전 감독의 선수 기용과 전략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다. 또 “매 경기 리드를 당하면 끌려다니다 지는 무기력한 팀이 됐다”며 ‘허슬두’라는 두산만의 전통적인 팀 컬러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두산은 이번 시즌 5강이 아니라 그 이상을 목표로 했다. 팬 여론을 바꾸고자 하는 이 전 감독의 의지도 높았다. 하지만 개막 직전 마운드 핵심인 곽빈, 홍건희 등의 부상으로 이탈하며 최악의 시나리오 속에 출발했다. 이 전 감독이 이번에는 터닝포인트를 만들지 못했다. 무기력증에 빠진 타선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고, 팀 배팅 마저 사라졌다.
결국 최하위권 두 팀이 만난 지난 주말 키움전은 ‘단두대’ 매치가 됐다. 외국인 선수 원투펀치를 두산전에 넣은 키움이 위닝시리즈(2승1패)를 가져갔다. 두산은 진 2경기에서 모두 0-1로 패했다. 두산 역시 이승엽 감독 체제를 더 끌고 갈 명분이 사라졌다.
결국 팬들의 요구는 ‘허슬두’ 야구를 되찾는 것이다. 현역 시절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이 전 감독은 베어스 선수로 뛰지 않은 최초의 정식 감독이다. 두산은 ‘베어스’ 색채가 강한 팀이다. 프로 출범 이전에 현역 시절을 보낸 초대 사령탑 김영덕 감독과 김성근 감독, 김인식감독, 이재우 감독 등 야구 원로들 이후로는 대부분 베어스 출신 지도자들만 ‘대권’(감독대행 제외)을 잡았다. 2014시즌을 지휘한 재일교포 송일수 감독이 유일한 예외였는데, 그는 베어스 선수 출신이 아니지만 직전 시즌 두산 2군 감독을 경험했었다. 대부분은 강한 카리스마가 무기였는데, 차분한 리더십의 이 전 감독은 쓸쓸히 퇴장했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면 현재 두산의 선수 구성이 약한 것도 사실이다. 젊은 투수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지지만, 오랜 ‘왕조’ 시대를 지나오면서 세대교체 폭이 커지며 야수진에 물음표가 너무 많다. 양석환, 강승호 등 베테랑 자유계약선수(FA)의 길어지는 부진도 문제다. 곽빈, 홍건희 등 주축 투수들이 돌아온다지만, 반등을 노리는 두산에 어려운 숙제가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