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채식주의자는 베스트셀러지만, 한국은 여전히 육식주의자의 천국입니다. 저도 한때는 삼겹살 마니아였습니다.
막상 채식주의자가 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이더군요. 일단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골목마다 음식점이 있었지만 고깃집 건너 고깃집이었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는 건 보물찾기보다 어려웠습니다. 저는 차차 집에서 먹는 편을 더 선호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더라도 혼자서 다른 것을 먹어야 했죠. 같이 먹어도 같이 먹는다는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고 마치 혼자서 식사를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난달에는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거기서 당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새를 사랑하는 웹소설가, 생태학을 공부하는 디자이너, 아이들을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을 만나 여름에도 선풍기를 틀지 못하는 동네 아이를 걱정하고, 비둘기에게 먹이 주는 것이 불법이 된 세상을 고민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이 아프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럴수록 더 수다를 떨겠다고 했어요. 그러다 누군가 외롭다고 말했는데, 그때 저는 채식주의자 영혜, 당신이 떠올랐어요.
기후소설을 쓰고,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실천을 하면서 가장 강렬하게 경험하는 감정은 외로움입니다. 세상을 살리는 운동을 하는데 왜 점점 주변부로 밀려나는 기분이 드는 걸까요? 나는 육식을 하지 않아, 운전을 하지 않아, 플라스틱을 쓰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람들과의 거리는 두 걸음 더 멀어졌어요. 나는 계속해서 아니요, 아니요라고 말하면서 세상의 호의를 거절하는 사람이 됐고, 염려와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그 자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영혜’가 되어갔어요.
당신이 마지막으로 세상에 던진 말을 기억합니다. ‘먹기 싫다’는 말이요. 저는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몹시 기뻤어요. 당신은 먹지 않는 음식들로 가족을 위한 하루 세 끼 밥상을 차려야 했을 때도, 초대받은 자리에서 먹기 싫은 음식을 대접받았을 때도, 당신은 ‘싫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당신은 ‘싫다’고 말하는 대신 ‘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죠. 웃통을 벗었고, 새를 죽였고, 물구나무를 섰어요. 사람들은 당신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했고, 당신은 점점 더 외로워져 갔습니다. 해외여행, 스마트폰, 육식, 자가용… 우리는 세상이 지정한 욕망을 철저하게 수행하면서 우리와 똑같지 않은 사람은 세상 밖으로 밀어내는 중입니다. 당신이 정신병원으로 보내진 이유는 단 하나, 다른 사람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다음주에도 저는 지구와 나를 살리는 워크숍을 엽니다. 거기서 당신을 기다릴 거예요. 동물은 먹기 싫은 사람을,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을요. 주식이 아닌 꿈 이야기가 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저마다 다른 욕망을 꿈꿀 자유가 있으니까요. 당신을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워크숍에 초대했을 텐데. 세상에는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다는 것, 숨쉬기 불편한 브래지어를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서로에게 가르치고 배웠을 텐데요.
어제 또 새끼 돌고래가 낚싯줄에 감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도 요즘은 자꾸 먹기가 싫어져요.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