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정 기자 hjcho@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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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스턴대 줄리엣 쇼어·원 판 교수, 6개국 140여개 업체 2천800여명 대상 실험

임금 감소 없는 주4일제가 근로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피로와 수면 문제 감소 등으로 번아웃이 줄고 직무 만족도와 신체·정신 건강은 뚜렷하게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22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보스턴대 줄리엣 쇼어와 원 판 교수팀은 과학 저널 네이처 인간 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서 미국·호주 등 6개국 140여개 업체 2천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6개월 간의 주4일제 실험에서 “근무 시간 단축으로 직원 복지와 기업 생산성이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미국·영국·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캐나다 등 6개국 141개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4일제 전후로 ‘번아웃(극한 피로)’과 ‘직무 만족도’, ‘정신 건강’, ‘신체 건강’에 대한 평가 점수를 각각 매겼다. 그리고 같은 기간 동안 주 5일제 근무를 한 다른 기업 12곳의 근로자 258명과 비교했다.
연구 결과 직원들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주4일제 시행 전 39.12시간에서 34.48시간으로 4.64시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8시간 이상 감소한 경우가 30.7%, 5~7시간 감소 24.6%, 1~4시간 감소 20.3%였으며 변화가 없는 경우는 24.3%였다.
근무일·근무시간 감소로 인한 긍정적 효과는 시간 감소 폭에 따라 달랐다. 주당 근무 시간이 8시간 줄어든 그룹의 번아웃 감소와 직무만족도 향상, 정신건강 개선 효과가 가장 컸고 주5일제 근무 기업 직원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결과 주4일 근무제 도입 전후로 번아웃 점수는 5점 중 2.84점에서 2.38점으로 낮아졌고, 직무 만족도는 10점 중 7.07점에서 7.59점으로 상승했다. 정신 건강 점수는 5점 중 2.93점에서 3.32점으로, 신체 건강 점수도 5점 중 3.01점에서 3.29점으로 개선됐다.
반면 주5일제 근무를 지속한 대조군은 번아웃과 직무 만족도, 정신 건강, 신체 건강 점수에서 모두 유의미한 변화가 없었다.
주4일 근무제의 직무 만족도 향상 배경에는 업무 능력 향상(19.6%), 피로 감소(8.4%), 수면 개선(7.8%)이 있었고 번아웃 감소에는 피로도 감소(48.1%)와 업무 수행 능력 향상(16.6%) 등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해 연구진은 “근무 시간의 변화는 웰빙, 특히 번아웃과 직무 만족도에 대한 중요한 예측 변수였다”고 분석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주4일 근무제 실험에 참여한 회사의 90% 이상은 실험 기간이 끝난 후에도 주 4일제를 유지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실험 시작 12개월이 지난 후 설문 조사를 다시 실시한 결과 직원들이 여전히 높은 수준의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코로나19 이후 원격근무 확산, 스트레스와 번아웃 증가 등으로 기존 주 5일제의 한계가 분명해졌다”면서 “이번 실험은 임금 삭감 없이도 근무시간 단축이 가능하며, 직원 복지 향상과 조직 성과 유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실증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그러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한 만큼 주 4일제에 우호적 특징이 있을 가능성과 주관적 자기 보고에 기반한 점 등 연구에 한계가 있다며 향후 더 다양한 산업과 조직 규모를 포함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연구팀은 “근무시간 단축이 다수 노동자의 삶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라며 “정책 입안자와 기업들이 ‘주4일제’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주4.5일제’를 먼저 도입한 뒤 점차 ‘주 4일제’를 추진하겠다는 단계적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현재 주4일제 또는 주4.5일제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업·기관은 경기도내 민간기업 67곳과 도 산하 공공기관인 경기콘텐츠진흥원 등 총 68개 기업이다.
관련해 지난 21일 임명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인사청문회 전 국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를 통해 “인공지능(AI) 등 기술 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임금삭감 없이도 (주4.5일제) 가능하다”면서 “일률적인 제도 강요 보다는 도입이 어려운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자발적 확산을 유도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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