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에너지 개발, 가능성 여는 유연한 사고 필요

2025-10-26

제주도의 만장굴같이 깊은 굴에 들어가면 무더운 여름에는 아주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그 깊은 땅속의 온도는 영상 12~13도 정도로 일년 내내 거의 일정하기 때문이다. 덥고 추운 감각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같은 온도가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땅속의 온도를 어떻게 해서 우리들의 집안으로 가져올 수 있다면 공짜로 냉난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아이들이나 할만한 허황된 생각 같지만 그러한 시도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지자체들, 지열 난방 개발

캐나다 동부, 찬 바닷물로 냉방

미 코넬대, 냉방에 호수물 이용

소박하지만 창의적인 지혜 필요

다른 곳 열 가져오는 히트펌프

일단 아주 간단히 생각해 보면 이러하다. 우물을 파듯이 땅을 좀 깊게 파고 파이프를 묻어서 지상으로 통하게 한다. 거기에 다른 파이프를 추가로 연결하여 폐쇄된 물길을 만들면 물이나 다른 유체를 계속 순환시킬 수 있다. 그렇게 만든 순환적 시스템의 한쪽 끝은 지하에 묻어두고, 다른 한쪽 끝은 집안으로 들여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이라면 땅속에서 시원해진 물을 끌어와서 그 냉기로 집안을 식히고, 그 과정에서 그 물은 열을 받아서 가져가기 때문에 좀 따뜻해진다. 그 물을 땅속으로 돌려보내면 다시 시원해진다. 이렇게 유체를 지상과 지하 사이로 왕복시키는 시설은 충분히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 하고 있다. 상수도로 가정에 물을 공급하고 쓰고 난 물을 하수도로 빼내는 것도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지하에 관을 묻어서 유체를 운반하여 가정에 공급하는 것은 도시가스 시스템에서도 늘 사용되는 기술이다. 지열을 이용하려면 수도관이나 가스관보다는 더 깊이 묻어야 하지만 지하 200~300m 정도로 들어가게 되면 충분하다.

물론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겨울에 난방을 하고자 한다면 땅속에서 올라오는 영상 10도 남짓한 온도로는 어림도 없다. 더 높은 온도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히트펌프(heat pump)’가 필요하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그 열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거꾸로 하는 것이 히트펌프의 역할이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그렇게 하여 작동된다. 에어컨을 반대방향으로 달았다고 생각하면 히트펌프를 이용한 난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히트펌프를 운전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한데, 깊은 땅속의 온도를 기반으로 하면 그 필요한 에너지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추운 겨울에 실내와 실외의 공기 사이에 히트펌프를 돌린다고 생각해보자. 영하 10도 정도 되는 바깥 공기에서 열을 빼앗아서 영상 20도인 실내 공기에 주는 것은 힘이 든다. 그러나 그렇게 차가운 지상의 공기 대신에 지열을 받아서 비교적 훈훈한 물질을 사용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열을 빼낼 수 있다. 보통 히트펌프로 난방을 해도 기름이나 석탄 등을 태워서 난방하는 것보다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데, 지열을 이용하면 더욱 좋아진다.

현재 미국에서는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지열난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에서는 친환경적인 정책을 다 취소하고 있지만 의식 있는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독자적인 방향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최근 보스턴의 교외 지역 프레이밍햄에서 지열난방 시스템이 시험가동에 들어갔다. 주 정부에서 지원하고 HEET(Home Energy Efficiency Team)라는 비영리 기구에서 계획을 주도하였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그 시공을 에버소스라는 에너지회사에서 맡았다는 것이다. 에버소스는 전력도 취급하지만 도시가스 공급의 전문가들이다. 요즈음 가스회사들이 화석연료를 쓰지 않게 되는 미래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궁리하고 있으며,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이 있는 회사들도 종종 있다. 도시가스 회사는 지열난방의 선두주자로 아주 적격이다. 땅을 파고 관을 묻어 여러 가정에 유체를 공급하는 지열난방 기술과 경험을 누구보다도 풍부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수물 냉기로 에너지 85% 절감

자연 속에 있는 냉기를 이용하여 냉방을 하는 시도들도 여기저기서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 동해안에 위치한 핼리팩스에서는 이미 1986년에 차가운 바닷물을 이용하는 냉방시설을 설치하였다. 미국의 명문 코넬대학에서는 25년 전부터 캠퍼스에 있는 깊은 카유가 호수 바닥의 차가운 물을 이용한 냉방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 당국과 시 정부가 협조하여 만들어 낸 성공사례이다. 그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 교수도 아니고 캠퍼스 시설 책임자였던 래니 조이스였다. 그러한 시설을 처음 설치할 때는 많은 투자를 해야 했지만, 캠퍼스에서 냉방을 위해 쓰는 에너지를 85% 절감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성이 있으며, 에너지 소비를 줄임으로써 기후변화를 막는데 공헌할 뿐만 아니라 에어컨에 필요한 냉각제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공해 요인도 줄인다.

친환경적 에너지를 개발하는 데는 모든 가능성을 타진하는 유연한 사고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지열난방은 지금까지 잘 알려진 심부(深部) 지열발전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심부 지열발전은 정말로 깊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화산처럼 뜨거운 열을 찾아내는 일이고, 아무나 손댈 만한 일은 아니다. 그 반면 지열난방은 지구 표면 가까이에서 비교적 손쉽게 이루어진다. 대규모 공사만이 제일이 아니다.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인간의 창의력을 발휘해 볼 필요가 있다. 폐품 활용하듯이 있는 것을 이용하는 소박한 지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지열난방=땅속의 열, 즉 지열 에너지를 활용한 난방 방식이다. 지열의 활용 깊이에 따라 천부 지열난방(Shallow Geothermal System)과 심부 지열난방(Deep Geothermal System)으로 나눌 수 있다. 천부 지열난방은 지표에서 약 100~200m 깊이의 비교적 얕은 곳의 지열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주로 건물의 냉난방에 사용된다. 반면에 심부 지열난방은 지하 수 ㎞ 깊이에서 얻은 고온의 지열수나 증기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지역난방이나 발전에 적용된다.

장하석 케임브리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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